
우리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에 살면서 진실을 외면하곤 한다.
한의사학 박사 유철호씨가 쓴 '유이태'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유이태'는 작가가 41년간 연구하여 집필한 책이다. 책은 일생을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질병 없는 세상을 염원한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선비 의사 유이태' 에 관한 글이다.
조선 후기의 의학자 유이태(劉以泰) 선생의 고귀한 삶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산청군청과 특정 단체가 합심하여 허구 인물 유의태(柳義泰)가 어떻게 실존 인물 유이태의 역사를 가로챘는지, 그 역사를 왜곡한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은 단순히 인물 평전(評傳)을 넘어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워온 용기 있는 기록이자, 거짓 역사를 상품화하려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비판서다.
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됐다.
전반부는 '조선의 히포크라테스'라 불리는 유이태 선생의 위대한 삶을 어린 학생들과 성인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로 섬세하게 복원했다.
유이태 선생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계기로 입신양명의 뜻을 접고 의학에 입문했다.
유이태는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과 친구들에게 빌려온 백미로 굶주림에 있는 사람들을 구했다.
유이태는 조선의 백성은 평등하므로 신분과 계급, 관리와 천민,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재물과 부를 탐하지 않은 환자들의 곁을 지켰다.
특히, 죽음의 전염병 홍역이 창궐했을 때, 목숨을 걸고 백성을 구했고, 홍역 전문 의서 '마진편'을 저술한 일화는 그의 '인술제세', 즉 '인술로 세상을 구한다'라는 정신이 단순한 사상(思想)이 아닌 삶이 그 자체였음을 증명한다.
말년에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대궐로 가서 어의(御醫)가 되어 임금 숙종의 병을 고친 공로로 안산군수에 제수됐으나, 부임하지 않고 향리 산청으로 돌아온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참 의원'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유이태의 삶과 의술 철학까지 일생을 살아가면서 실천한 사상을 조명한다. 부모를 공경히 모시는 효도(孝道),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시도(施道), 바른 길을 걷는 정도(正道), 불쌍한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의도(醫道), 건강하게 살아가는 수도(壽道) 등 '인생5도(人生五道)'와 인술을 펼치면서 실천한 어질고(仁) 의(義)로운 마음으로 치료하는 인의도(仁義道), 환자를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는 정성도(精誠道), 명예, 재물이나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청렴도(淸廉道), 끊임없이 의학을 연구하여 환자 치료에 헌신하는 근면도(勤勉道), 환자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화목도(和睦道) 등 '인술5도(仁術五道)'를 기술하고 있다. 또한 백성들의 건강을 염려해 남긴 '건강관리지침', '유훈(遺訓', '어록(語錄)'을 통한 인술제세(仁術濟世)의 의학정신과 제중인심(濟衆仁心)과 혜민애세(惠民愛世)의 인생관(人生觀), 정신관(精神觀), 수기관(修己觀), 학문관(學問觀), 치병관(治病觀), 의약관(醫藥觀) 등 의학 사상을 기술한다. 이는 오늘날 의료인에게도 유효한 의술 윤리 도덕을 제시한다.
이 책이 지닌 진정한 힘은 후반부에 있다. 책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동의보감' 저자 '허준의 스승 유의태'라는 인물이 1965년 '인물한국사'에 실린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이후,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다.
아울러 책은 산청군청에서 허구 인물 류의태를 실존 인물로 둔갑시켰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존 인물 유이태가 남긴 사적까지 허구 인물 류의태의 사적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국민 혈세를 낭비해 허구 인물 류의태의 가묘와 묘비, 동상과 기념비를 세우고, 숭모제를 지내며, 류의태 상(賞)을 시상했던 산청군청의 행정 행위가 잘못됐음을 밝힌다.
이러한 역사 조작에 대해 저자는 문헌과 기록, 족보와 공문서 등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 왜곡에 동참한 곳까지 날서게 비판한다.
그리고,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던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역사 왜곡에는 순식간, 바로잡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유이태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진정한 '참 의원'의 길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되며,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지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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