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육묘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2025-02-20

겨울의 추위가 끈질기고 변덕스럽게 반복되는 2월, 한해 농사일을 갈무리하고 잠시 주춤했던 농민들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지기 시작한다. 남편과 나 또한 2월 중순 농사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굳게 닫혀 있던 육묘장의 문을 활짝 열고, 무성하게 자랐다가 추위에 얼어 말라버린 잡초들을 뽑아 정리했다. 또 거미줄 쳐진 모판의 흙을 털어내며 재사용할 수 있는 상태의 모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새로 들어온 유기농 상토도 한편에 쌓아두었다. 이 모든 것은 파종과 육묘를 위한 사전작업들이다.

모판에 흙을 담고, 작고 단단한 씨앗을 넣어 다시 흙을 덮는 일을 수백번 반복하면 앉은자리에서 짧게는 3시간, 길면 한나절 꼬박 단순 노동을 하게 되는 셈이다. 파종작업을 마치고 일어나면 꼬리뼈와 어깨·허리 등 온통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농사일 중에 파종과 육묘를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은 씨앗에 담긴 생명력에 있다. 동글동글 깨알같이 작은 씨앗 한알에 적정 온습도를 유지해주면 어느새 단단한 껍질을 톡 깬 후 싹이 나오고 뿌리가 나와 흙이 담긴 작은 공간을 휘감는다. 씨앗이 여린 싹으로, 튼튼한 모종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나는 해마다 더 깊이 육묘에 대해서 배우고 농민으로서의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육묘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한 작업이다. 싹을 튼튼하게 키워야 아주심기(정식)를 했을 때 몸살을 앓지 않고 잘 자라 알찬 열매를 맺는다. 2월의 싸늘한 공기가 무섭다고 해서 너무 따뜻하게 키우면 키만 크고 약해지는 웃자람이 생긴다. 이를 방지하고 튼실한 모종으로 키워내려면 차가운 외부 환경에 적당히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육묘를 하며 배운 지혜는 삼남매를 양육하는 일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해나갈 수 있는 인격체로 길러내는 일, 농민이 밭에 심을 모종을 키워내는 일과도 참 비슷하다. 그래서 모종으로 자라나는 싹들이 다 나의 아이들처럼 느껴져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매년 겨울과 봄 사이, 파종하고 육묘하며 속으로는 숫자를 세어본다. 앞으로 농민이라는 이름으로 파종을 몇번 더 할 수 있을지. 또 나에게 육아의 지혜를 주는 이 농업으로 우리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걱정 없이 할 수 있을지. 절대농지 축소와 기후 위기, 청년농민에게 더욱 높아지는 진입장벽 등 코앞에 닥친 어려움을 돌파하고 나는 스스로의 수고로움에 부끄럽지 않은 농민으로 무르익을 수 있을까?

김지영 라온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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