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영과 함께 떠나는 생태 환경문학 기행(19)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의 역사

2025-04-23

 경기도에 연천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한탄강의 절경과 주상절리 지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됨으로써 그동안 동아시아에는 찍개 문화만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작은 유물 하나,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때로는 진실을 증명하고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1948년 미국의 고고학자 할람 모비우스(Hallam L. Movius, 1907-1987)는 구석기 문화를 주먹도끼 문화권과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그는 인도를 기점으로 동쪽의 동아시아 지역에는 주먹도끼가 없고 단순한 형태의 찍개 문화만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열등함을 입증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곡리에서 주먹도끼의 발견이 보고됨으로써 아시아 구석기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발견은 인류 이동 경로와 문화 전파에 대한 기존 이론을 재검토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했다는 의미가 크다. 세계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한 점 돌멩이의 발견에서 일어났다.

 말로만 듣던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를 찾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에서 처음 유물이 발견된 사정이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설명을 들으며 현장을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든다. 그동안 막연하게 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전곡리 유적 방문자센터 건물 바로 건너편 소나무 세 그루 옆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가끔 벼룩시장에서 고흐의 작품이나 유명 화가의 작품을 헐값에 싸서 횡재한 누군가의 사연이 나올 때마다 부러웠던 적이 있다. 몇십 년 몇백 년을 방치 상태로 있다가 세상에 다시 나와 주목 받는 사연은 들을 때마다 새롭다. 누군가에게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지만 눈 밝은 이에게는 보물로 다가온다는 표현이 연천 전곡리만큼 적절할 곳은 드물 것이다.

 흔히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한다. 우리는 만약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만약 그렉 보웬이 여자친구와 전곡리에 놀러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 우리 곁에 없을 것이다. 

 연천에는

 4월에도 우박이 내렸다

 햇살이 비치다가 다시 비가 내렸다 

 신성한 땅의 기운과

 하늘의 음성이 더해져

 봄기운과 마지막 싸우고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설 때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막아서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구석기부터 시작한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져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바로 지금이라고,

 어느덧 봄이다

  - 봄이 말을 건넨다

 연천은 전주에서는 4시간 거리이니 가기가 쉽지 않다. 한 번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곳이다. 지난 겨울에 찾았을 때는 모든 것이 추웠고 눈 덮힌 주변 풍경은 더 을씨년스러웠다. 얼음 낀 한탄강을 바라 보며 절경에 감탄만 하다 돌아왔다. 하지만 봄에 맞이하는 전곡리는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었다.  

 이곳의 특이한 지형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물론 한반도에서 주상절리는 강원도 철원, 제주도, 울릉도 등지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의 특징은 다른 곳과 달리 주상절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곳을 통칭하여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부른다.  

 한탄강 유네스코 지질공원은 54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 절벽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한탄강을 따라 좌상바위, 백의리총, 아우라지 베개용암, 재인폭포로 이어지는 명소가 길게 늘어져 있다. 여기는 단순한 지질공원 이상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고학적인 의미가 더해져 충분히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 중 압권은 재인폭포이다. 높이 18미터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부터 쏟아지는 폭포는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폭포 입구에서 재인폭포까지 데크를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인폭포 가는 길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좌상바위가 있다. 무려 60미터를 자랑하는 좌상바위는 한탄강가에 위치해 있어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이 왕이면 간 김에 임진강에도 눈길을 두어 보자. 수십만 년 전에도 흘렀을 그 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하찮게 여겨질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이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도도히 흐르던 임진강이 내게 말해주었다. 시간은 짧다고, 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었다고, 그러니 주변과 눈을 맞추며 좀 더 사랑하며 뜨겁게 살자고. 오늘도 우리는 그 말을 가슴에 품고 과감히 떠날 필요가 있다. 다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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