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아라

2025-04-28

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충남 부여의 신동엽문학관을 다녀왔다. 세미나 준비로 달포 넘게 그의 시와 산문 전집을 읽고 난 후였다. 복원된 생가, 육필 원고와 그가 입던 잠바 등 세심한 전시관을 둘러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가난과 외세, 분단과 부패한 권력 따위의 껍데기를 걷어치우고, 향기로운 흙 가슴 알맹이만 남는 세상을 꿈꾼 신동엽 시인은 39살로 죽었어도 현재를 일깨우며 살아 있었다.

1930년생인 그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혼란했던 해방 정국, 6·25전쟁, 4·19혁명과 5·16의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다. “3·1의 하늘로 솟았다가 또 다시 오늘 우리들의 눈앞에 솟구쳐오른 아사달과 아사녀의 몸부림, 빛나는 앙가슴과 물굽이의 현란한 반항이었다”(「아사녀」, 1960.7.)라고 4·19혁명의 벅찬 순간을 노래했는데, 혁명의 과제를 정치권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나 부정 축재자와 선거 부정 처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틈바구니를 뚫고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5·16 군사쿠데타와 30여 년 군사정권을 불러들였다.

시인은 4·19와 5·16이 이어지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목도한다. 민중은 여전히 가난했고, ‘흡반족, 빈대, 낙지발’ 등으로 표현되는 정치 브로커와 경제 농간자, 부패 문화 배설자들이 여전히 외세에 빌붙어 민족을 갈라놓고 활개 치는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시인은 1961년에 「시인 정신론」과 「60년대의 시단 분포도」를 통해 위기에 처한 민족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지 논하고, 1962년에는 “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봤으면, / 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봤으면, / 내 일생을 혁명으로 불질러봤으면”(「서둘고 싶지 않다」) 하고 희망을 노래한다. 1963년에는 「주린 땅의 지도 원리」에서 4월 혁명이 모자를 떨어뜨린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 과녁을 낮춰 심장을 뚫어버리자고, 쇠붙이를 녹여 호미를 만들고, “역사밭을 갈고 / 뒤엎어서 / 씨 뿌릴 / 그래서 그것이 백성만의 천지가 될” 세상을 만들자고 노래한다. 그리고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는 「껍데기는 가라」(1965), 동학혁명과 3·1운동, 4월 혁명을 온전히 접목한 장편서사시 「금강」(1968)을 창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알맹이는 아사달과 아사녀, 신하늬와 진아로 표현된 민중이었다. 그리고 “인생에의 구심력을 상실한 채 제각기 천만 개의 맹목 기능자”와 “교활하고 호전적인 두목 상인들”, “일단의 정치 전문 기술자들”, ‘쇠붙이’로 표상되는 반민족·반민주 세력들이 껍데기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를 말했다. “인간의 순수성은, 인간의 머리 위에 어떠한 형태의 지배자를 허용할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략) 민주주의의 본뜻은 무정부주의다. (중략)인민만이 세계의 주인인 것이다.”(「단상 모음」52) 제도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군가를 머리 위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잠재 의지, 곧 자유에의 의지를 지닌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새로워져야 하고 재발명되고 재발견되어야 한다는 것.

헌정질서를 파괴하며 쿠데타를 획책하다 실패한 내란 수괴 윤석열의 파면, 내란 대행 꼬리표를 달고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생존 기회를 엿보는 권력의 하수인들, 민중의 삶은 뒤로한 채 권력 놀음에만 몰두하는 온갖 껍데기들을 명확히 보았다. 이제 그런 껍데기들을 깡그리 보내버리고, 알맹이인 민중이 민주주의의 실천 주체로 당당히 나서서 새롭게 민주주의를 발견·발명해 나가야 할 때다. 신동엽 시인은 우리에게 ‘빛의 혁명’이 완성되는 길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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