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삼인칭이다.
실록에 나오는 역사는 사관이 제3자의 시각으로 써 내려간 역사다. 주인공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사관이 보고 판단하여 해석을 덧붙인 기록이다. 자연히 실제 인물의 의도나 생각과는 다른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은이 김응규가 쓴 일인칭 역사서, 《내가, 그다》는 ‘일인칭으로 읽는 조선 역사’라는 부제답게 역사 속 인물을 각자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태종, 정도전, 원경왕후, 단종, 조광조, 중종, 광해군, 소현세자, 사도세자, 정조까지 열 명의 인물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확실히 일인칭으로 보는 역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속마음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비록 어느 정도 허구가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소설식 구조이긴 하지만, 그만큼 어떤 마음으로 역사적 인물이 행동했을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물 열 명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지만, 최근 사극으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원경왕후의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끈다. 원경왕후와 태종 이방원은 조선판 ‘부부의 세계’라 할 만큼 애증으로 점철된 세월을 보냈다.
(p.61)
1382년, 혼기를 넘었음에도 불안은 없었다. 평균 15세면 결혼하던 고려 말, 나는 15세를 훌쩍 넘어 18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한 소년을 점찍었다. 아버지는 성균관 사성. 고려의 쟁쟁한 동량들이 공부하는 국립대학의 부총장. 그중 남 주기에 아까운 한 동량이 눈에 띈 모양이다. 그가 이방원, 16세의 미소년이었다. 수재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 모양. 그럴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무장 이성계. 무인의 피에 문인의 자질을 가졌으니 단연 군계일학이었을 터.
원경왕후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였을 때 그의 냉혹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때 알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자신이 겪은 불행의 씨앗이 여기서 시작됐음을.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않고, 그것은 핏줄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봤어야 한다고 한탄한다.
조선 개국에는 원경왕후와 그 친정인 민씨 집안의 공이 매우 컸다. 그녀는 병장기를 모으고 이방원에게 갑옷을 입혀주며 본인도 직접 싸움터로 나가려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그녀의 동생들은 정도전의 측근인 ‘이무’를 포섭해, 그의 결정적인 제보로 정도전을 제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방원이 임금이 되자 부부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태종은 그녀의 공이 ‘유 씨의 제갑(提甲)’보다 크다고 인정하면서도 민씨 집안의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질까 봐 거리를 두었다. 유 씨의 제갑은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를 축출할 때 부인 유 씨가 갑옷을 입혀 나가 싸우도록 한 것을 말한다.
(p.69~70)
거기에 방원은 더 크고 세게 일격을 가했다. 왕권 강화를 핑계로 내 친정 피붙이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냉혈한, 피에 굶주린 귀신처럼 그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들을 가리지 않고 숙청했다. ...(줄임)... 재위 7년쯤, 방원은 마침내 내 동생들 민무구와 민무질을 처단하고 뒤이어 남은 어린 두 형제도 역모로 몰아 죽여버렸다. 아버지도 홧병으로 죽으니 딸을 잘못 둔 탓에 내 친정은 졸지에 풍비박산 나버렸다. 그렇게 내 말년은 불행했다. 나는 이제 방원에게 잊혀진 존재였다.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자리를 채우는 정도.
남편의 손에 멸문지화를 당한 친정을 보는 원경왕후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무엇을 위해 남편을 임금으로 만들었던가 하는 자괴감에 하루도 편히 지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결국 궁궐을 나와 전에 살았던 사저로 돌아갔다.
18년 만에 돌아간 친정은 모두가 죽고 없는 적막강산이었다. 그토록 소망했던 왕비의 자리였지만 행복은 잠깐, 악몽 같은 세월이었다. 그녀는 불심에 기대어 여생을 보냈다. ‘방원이라고 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거친 세상 구경 한번 제대로 한’ 삶이었다. 다행히 훗날 세종이 된 충녕대군이 효자여서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심신이 지친 원경왕후는 56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고, 태종 이방원도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떴다. 함께 열한 명의 자식을 낳을 만큼 사랑했지만 끝내 증오로 점철된 말년을 보낸 부인에 대한 감정을 풀지 못한 채, 그녀와 함께 ‘헌릉’에 묻혔다.
(p.72)
후손들이여, 그대들이 무심코 나들이 삼아 발길을 둔 서울 강남 끝자락 헌릉에는 이처럼 많은 사연이 함께 묻혀 있느니.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국가정보원’이라고 하는 막강한 기관이 내 유택 옆에 자리하고 있으니 아직 호랑이 등의 세파가 끝나지 않은 것인가?
이와 같은 원경왕후의 한 많은 생애처럼, 다른 인물들의 삶도 저마다의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정도전과 태종의 시각에서 쓴 서사도 그 짜임이 정교하다.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이 책의 구성이 유난히 참신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계속되고, 또 반복된다. 수많은 현인이 그토록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역사를 박진감 넘치는 인물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따뜻한 봄날, 이 책과 함께 태종 부부의 능인 헌릉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