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현대의 뱀파이어’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2025-10-24

“우리는 99%다”, “서민들과 소상공인들의 빚을 탕감하라”, “투기자본에 토빈세를 부과하라!” 2011년 9월 17일 200명의 활동가가 월스트리트 중심가로부터 5분 거리에 있는 주코티 공원을 점거했다. 역사적인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사실상 세계 자본주의의 총사령부라는 점에서, 이는 소련·동구 몰락 후 세계를 평정한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었다.

‘뉴욕시 노예시장.’ 주코티 공원에 가기 위해 월가를 걷고 있는데 고층빌딩 사이에 작은 팻말이 보였다. ‘월가가 노예시장이었어?’ 충격을 받고 인터넷을 찾아봤다. 뉴욕의 중심인 맨해튼과 월스트리트를 만든 것은 네덜란드였다. 1624년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차지하고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렀고, 2년 뒤 아프리카에서 12명의 노예를 실어왔다.

노예제라는 비인간적 토대 위에 세워진 월가

네덜란드는 영국으로부터 이곳을 지키기 위해 노예를 시켜 사방에 벽을 쌓았고, 이 벽 때문에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생겼다. 월스트리트는 시작부터 노예제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에 기초해 있었다. 1664년 영국은 맨해튼을 장악하고 도시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다. 영국은 노예를 더욱 적극적으로 잡아왔고, 1711년 월스트리트 중심에 노예시장을 개설했다.

금융센터로서 뉴욕의 역사는 길다. 1792년 24명의 중개인과 상인들이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만들었다. 뉴욕 금융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남북전쟁 이후다. 북부가 승리하자 JP모건, 록펠러 등이 월스트리트로 몰려왔다. 뉴욕은 미국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고, 세계 금융시장에서도 런던 다음의 ‘2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잘나가던 월스트리트는 1929년 ‘검은 화요일’ 주식 폭락과 대공황으로 위기에 처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이라는 국가의 경제개입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패권국이 되며, 월스트리트도 ‘세계 금융의 메카’로 성장했다.

월스트리트는 21세기 들어 두 번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우선 2001년 9·11 테러다. 알카에다가 워싱턴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을 공격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테러로 근 3000명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최상급 사무실의 반이 사라졌고, 일주일간 주식시장이 폐쇄됐다.

두 번째는 2008년 월스트리트 금융위기다. 클린턴이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투기성 금융상품을 허용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급증했다. 주택가격이 급락하자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등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금융자본의 투기로 노동인구 6%인 9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가구 총자산이 20% 감소했다. 부동산가격은 30%, 주식가격은 50% 폭락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은행인 시티뱅크를 살리기 위해 450억달러, GM 등 자동차업체에 250억달러 등 혈세 7000억달러를 투입해야 했다.

이는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을 촉발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80년대 이후 급부상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와 ‘99 대 1’이라는 양극화다. 대공황의 처방으로 도입한 케인스주의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를 살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재정적자 등 문제점을 누적시켰고, 해결책으로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도입됐다. 그 결과가 ‘99 대 1의 사회’다. 2023년 당시 미국의 상위 1%는 30%의 부를 소유하고 있지만, 하위 50%는 2.6%밖에 갖지 못했다. 게다가 1%는 점점 잘 살고, 99%는 그렇지 못하면서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금융자본, 투기자본, 불로소득의 득세다. ‘흡혈귀’는 오래전부터 ‘금융자본’에 따라다니는 이미지다.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모든 자본이 ‘수탈적’이다. 그래도 산업자본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등 생산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면, 금융자본은 돈놀이만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문제는 폴 케네디의 <흡혈귀 자본주의>(2017)라는 책 제목처럼, 갈수록 투기자본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자본주의 자체가 ‘흡혈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중이 분노한 것은 2008년 위기가 보여줬듯이, 금융자본의 투기가 파국을 초래하자 정부가 막대한 국민 혈세를 동원해 이들을 살려줬고, 살아난 투기자본들은 엄청난 배당과 보너스를 챙겨 다시 배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자본들이 ‘비용은 사회화하고 이윤은 사유화’한 것이다. 쉽게 말해, 손해는 국민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자기들이 챙긴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한 달 뒤에는 세계 900개 도시에서 벌어졌다. 이를 정점으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운동이 현대 자본주의의 심각한 양극화와 투기 자본화, 흡혈귀화를 여론화시키고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의 등장과 민주당의 ‘좌경화’를 끌어냈다.

‘노예 반란’ 장소서 ‘월가 점거 운동’은 상징성 커

주코티 공원에는 이제 ‘흡혈귀 자본주의’의 해체를 외치던 뜨거운 목소리는 사라지고, 간식을 먹으러 나온 월급쟁이들만이 눈에 띄었다. 문득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미국 최초의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1712년 4월 6일 20여명의 아프리카계 노예는 월가에 불을 지르고 백인을 공격해 9명을 살해했다. 반란은 실패했고 참가자들이 참혹한 처벌을 받았지만, 노예제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대의 흡혈귀’ 월스트리트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인 착취 수단이었던 노예시장 자리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나아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운동이 뉴욕 최초의 노예 반란 장소 바로 옆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쌍둥이 빌딩 자리에 세워진 9·11 테러 희생자 추모물은 주코티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 앞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묵념했다. 물론 9·11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다. 그러나 9·11 테러범들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미국은 이 같은 증오 범죄를 야기한 자신들의 ‘국가 테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미국이 폭격한 수많은 ‘쌍둥이 빌딩들’과 희생자들은 세계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기성찰이 아니라 9·11 테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무마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는 ‘국가 테러’를 저질렀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기이한 ‘예방 전쟁론’을 내세워서 말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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