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동업자’ 아닌 ‘인생 동반자’로만 남기를

2024-10-20

“전 미셸입니다. 시카고에 살죠. 버락 오바마라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이게 다예요.” 가장 모범적인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가 남편의 대선후보 시절 한 얘기다. 8년의 퍼스트레이디 뒤 그녀는 이런 기억을 남겼다. “내 앞에 43명이 있었지만 남겨진 지침서 같은 건 없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게 직업도, 정부 직함도 아니고 연봉도, 정해진 의무도 없다. 그냥 대통령에게 딸린 사이드카일 뿐. 그 진실은 나와 딸들이 버락에게 주어진 혜택을 나눠 받는 수혜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연인 내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문제 없이 잘 지내야 버락이 행복하고, 그래야 버락이 맑은 정신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처신하지 말자고 작정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주제넘은 여자라는 성난 민심이 들이닥칠 터이니.”(『BECOMING』)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최고 엘리트이던 ‘전업 영부인’의 고민과 성찰이었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국정 난맥 가중

정권 동업자 ‘보상 심리’라면 곤란

미셸 “내가 잘해야 남편 정신 맑아”

국정 선 넘지 말고 아내의 길 가야

우리의 퍼스트레이디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김건희 여사의 대선 전 약속이 가물가물할 만큼 인사·공천·현장시찰 등 공사를 무너뜨린 팩트들이 이어지며 정국 혼란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책들은 죄다 파묻히고 지지율 22%이니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력마저 흔들려버렸다. 혼란의 원인은 단 하나. 김 여사가 자신을 ‘권력의 동업자’로 자리매김하려 하기 때문이다.

남편을 대통령 만들려고 그녀가 음지에서 무진 애를 썼던 건 맞다. 김종인·이준석의 도움을 끌어내고, 심지어 ‘정치 브로커’ 격인 명태균도 활용하는 등 구석구석 고비고비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명태균과의 문자에선 “저는 명 선생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 완전 의지하고 있다”는 등 대선 브레인으로서의 자기동일시를 느낄 수 있다. 대선 전 아크로비스타 자택을 찾은 한 정치인은 “김 여사가 ‘당신은 정치는 잘 모르니 이 분 하라는 대로 하세요’라고 면전에서 얘기해 놀란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서울의 소리 기자에겐 “난 지금 어쨌든 후보니, 나랑 인터뷰하면 안 되고”에 이어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지. 내 말은 잘 들으니까”라고도 했다. 강한 자기애(自己愛)다. 권력을 함께 만들어 준 동업자라는 에고(ego)는 그러나 2022년 5월 10일 취임, 그 전날까지였어야 했다.

미국 대통령 부인들 중 가장 막강해 그만큼의 비난을 받은 낸시는 회고록에서 이런 심리를 드러냈다. “내가 경제·국방은 잘 모르지만, 사람 보고 판단하는 눈이 있다. 그래서 인사 문제에 제언한 건 사실이다. 로니(레이건)에게도 한가지 약점이 있다. 경계심이 없어 주위 사람들을 너무 믿고 순진했다. 그런데 나보다 로니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압박감에 시달리는 대통령의 마음을 돌봐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로니에게 도움이 안 되고 충성심이 약하다”고 그녀에게 찍힌 법무장관, CIA국장 등 죄다 은밀히 제거됐다. “부족한 남편을 뛰어난 정치 연기자로 만든 숨은 제작자 겸 총감독”이 낸시였다. “감독의 수직적 지시를 받는 배우로 길들여져 오히려 부인의 지시를 편안하게 느낀” 레이건이었다(케이티 마틴 『히든 파워』).

낸시류 심리의 문제는 그러나 지극한 ‘남편 사랑’이 바로 ‘나라의 이익’으로 이어질 거라는 자기중심적 착각이다. 베갯잇 소통이 줄 남편의 심리적 안정과 건강이야 모든 아내의 기여이겠다. 그러나 여사는 선거로 ‘획득한 권력’이 아닌 ‘획득된 자리’일 뿐이다. 대통령의 국정은 제도와 시스템의 운영이다.

더구나 ‘코바나컨텐츠’ 수준의 네트워크에서 얻은 김 여사의 안목과 경험을 세계 경제 10위 국가의 국정에 대입시키기란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기분 맞춰주는 ‘불나방류’ 인간들 속에서 사람 보는 눈 또한 제대로 키워졌을까. 함께 창업했으니 보상받겠다는 권력의 동업자가 돼선 절대 안 될 이유다. 아니 윤석열·이재명 후보의 아내들이야 대선 때 모두 감표(학·경력 부풀리기, 법인카드 유용)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았던가. 법과 관행으로 그어진 실선을 넘어 인사·사업·예산 등에 입김을 미치면 공정·균형이 무너진 ‘비정상의 나라’는 순간이다. 진짜 대통령을 ‘바보’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하려는 건가. 안 그래도 박근혜 ‘비선’의 트라우마가 깊어 권력 보는 눈이 훨씬 예리해진 우리 국민이다. 주변의 아첨과 보고의 홍수 속에 ‘자발적 격리와 고독’마저 필요한 결단의 자리가 대통령이다. 아내를 포함, 그 누구도 오염시켜서는 안 될 신성한 직무, 그게 대통령이다.

나라를 되세우려면 단호히 매듭짓고 가야 한다. 명품백, 공천·인사 등 모든 구설에의 진정한 해명·사과다. “재발 없다”는 맹서다. 용산 내 ‘김 여사 라인’ 사퇴는 그 믿음의 징표다. 엄정한 기개의 제2부속실, 특별감찰관도 함께다. 무엇보다 절실한 건 대통령의 ‘인생의 동반자’로만 되돌아가겠다는 김 여사의 자기 성찰이다. “저는 윤석열과 결혼했습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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