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르, 파닥파닥…”
바람이 속삭이듯,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칠흑 같은 공간을 가르며 전통피리 소리가 흘러나오자,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서 훅? 날아온 듯했다.
AI가 빚어낸 은빛 입자를 날개에 묻히고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그 생명 에너지는 꽃가루처럼 흩어져 부드러운 빛의 파동으로 퍼져나갔다. 이어 각국의
숨결을 머금은 수많은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무대는 어느새 미디어 아트와 K-팝 퍼포먼스의 향연으로 변했고, 그 빛의 무도회는 곧 세계 정상들이 앉은 만찬 테이블까지 날아가 그들의 손등 위에 건네진다. 이 하이브리드 로봇 나비는 과연 무엇을 속삭이고 싶었을까?
이달 초에 있었던 이번 2025 APEC은 단순한 경제 회의가 아니었다. 오감으로 역사를 느끼고 피부로 미래를 체험하게 한 하나의 ‘수행적 예술(Performative Art)’이었다. 미·중 정상이 동시에 이 경주라는 무대에 오른 장면은 그 자체로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었다. 회의실 안의 딱딱한 프로토콜과 달리, 무대 위에서 펼쳐진 나비의 비상과 빛의 파동은 긴장과 경쟁 속에서도 인간적 공감을 끌어내는 새로운 외교 언어였다.
하지만 그 화려한 막 뒤에서, 세계의 냉정한 시선은 묻고 있었다.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APEC은 지리적 인연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그리고 깊은 정치·경제적 분열선으로 나뉜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하다” 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적했다. 이 깊은 분열선을 K-컬처의 스펙터클이 과연 가릴 수 있는가? 화려한 문화 쇼케이스가 다자주의나 세계 무역 규칙 같은 실질적 외교 성과(substantive diplomatic achievement)를 대체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국제적 통합이나 협력의 깊이를 향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문화적 자산을 과시하는 ‘쇼’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국제사회는 소통 불능의 시대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 위기, 보호무역주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세계는 만성적인 피로에 젖어가고 있다. 차갑게 깜빡이는 데이터만 오가고 인간적 체온은 사라진 시대.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그 해답은 천년 고도 경주에서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왕실이 추구했던 조화와 상생의 정신, 즉 모든 분열과 파란을 잠재우고 평안을 불러온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상징성은 오늘날 세계의 갈등 구조와 기묘하게 겹쳐졌다. 금관의 황금빛이 일렁이며 상기시키는 동서 교류의 역사적 기억 속에서, 예술은 규약도 조약도 아닌,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풀어내는 ‘미학적 요법’이 되었다. 경주의 오래된 돌길, 신라 궁성의 유적, 고분 사이로 바람이 불면, 그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겹침은 회의장에서 논리와 숫자만 오가는 현실과 대조를 이뤘다.
대한민국은 APEC의 3대 목표인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을 딱딱한 문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은유, 즉 나비로 표현했다. 나비는 단순한 심볼이 아니라 동서양 철학을 담은 하나의 사상적 매개체였다. 그것은 현실과 꿈,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장자(莊子)의 나비, 각국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더 온전한 공동체로 변화(Metamorphosis)하는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나비, 고정된 국익의 논리를 넘어어 생성(Becoming)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나비였다.
그들의 손등에 내려앉은 하이브리드 나비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길 수 있다.”
공식 만찬에서 이 철학은 현실이 되었다. 대금의 호흡이 천년 신라의 명상적 시간을 열고, 이어진 지드래곤의 미디어 아트와 K-팝의 전율은 전통과 미래가 공명하는 순간을 만들었다. BTS RM의 차분한 스피치는 진정한 연결은 프로토콜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며 K-컬처가 단순한 흥행 콘텐츠를 넘어 사유의 힘을 지닌 예술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한류가 단순한 ‘흥행 수출품’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소화불량을 풀어내는 미학적 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쇼는 기술이 패권 경쟁의 무기가 아니라 ‘연결’과 ‘번영’을 향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찬란함 뒤에 가려진 그림자도 있었다. 외신들이 지적한 경주의 인프라 한계,부족한 숙박시설과 비효율적인 교통은 화려한 쇼케이스에 비해 현실적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문화 외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떠받치는 기반시설은 냉정한 현실이며, 이 균열은 미·중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한국의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문화적 공감대는 다음 날 실제 외교 무대에서 힘을 발휘했다. 난항을 겪던 한미 관세 협상의 극적 타결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어젯밤의 감동과 서사는 협상 테이블 위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자본’을 쌓아 올렸다. 경주에서 보낸 하룻밤은, 문화가 어떻게 가장 정교한 외교 무기이며, 경제 전쟁의 보이지 않는 전선이 될 수 있는지를 세계사에 증명했다. ‘문화쇼’가 어떻게 ‘실질적 외교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경주는 시간을 축적하는 도시다. 이곳에서 정상들은 ‘지금, 여기’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넘어, 천년 전 신라의 외교관과, 혹은 천년 후의 역사가와 대화하하는 듯한 시간의 교란을 경험했다. 그들은 ‘국가의 대표자’가 아닌, 문명의 지속을 고민하는 ‘역사적 존재’로 자신을 재인식하게 된다.
분절되고 피로한 시대. 우리는 경주에서 보았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섬세하고 조용한 날갯짓이 어떻게 폭풍을 잠재우고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지를. 문화는 더 이상 외교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의 언어일지 모른다.
그날 밤 경주 하늘 위에서 수천 마리의 나비가 은빛과 금빛으로 날아오르며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것은 외교의 미래였다. 진정한 외교란, 힘의 논리나 숫자 경쟁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섬세한 공감, 그리고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큰 변화임을.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현실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 날갯짓을 일회성의 장면으로 남길 것인지, 지속 가능한 국제질서의 언어로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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