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념과 알권리

2024-11-25

지난 10월29일 정부는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정보공개청구를 받지 않을 기준을 마련해 담당자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행정력 낭비를 막겠다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피로도를 무시하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걸까?

세월호 유가족인 박종대씨는 국회와 대한변협, 언론,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4·16 세월호 사건 기록연구>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썼다.

정부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자신의 역할을 포기했기에 유가족이 직접 나서서 세월호가 왜, 어떻게 침몰했고, 왜 구조하지 않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는가에 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박종대씨는 정부를 상대로 340여건에 이르는 정보공개를 청구해 “매우 유의미한 자료”를 수집했다.

2022년 10월29일 서울시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인파가 몰리면 정부가 교통을 통제하며 안전을 보장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사고 시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할 것이란 사회적 통념과 달리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정부, 사회통념과 달리 제 역할 못해

10·29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서 유가족은 “누구 하나 피드백해주는 사람도 없고, 경찰관도 소방관도 119구급대원도 전부 붙잡고 물어봤지만 다 모른대요” “정확한 위치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 “정확한 건 얘기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던 당시의 막막한 상황을 들려준다. 시민에게 정보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정부는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효과적으로 전파하지도 않았고,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23년 7월19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는 제방이 무너져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면서 14명이 목숨을 잃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비가 많이 내릴 거란 예보가 있으면 정부가 도로나 제방을 관리하고 주민이 위험을 신고하면 즉각 대응할 것이란 사회적 통념과 달리,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면 사후 대응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란 사회적 통념과 달리,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715오송참사기록단이 쓴 <나 지금 가고 있어>에는 “왜 혼자만 살았냐”는 질문을 받고 “병원출입을 거부당”했던 생존자, “주검을 수습한 구급차를 가로막고 울부짖은 후에야 그 행선지를 알 수 있”고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도, 제대로 된 정보도 없었”던 유가족의 이야기가 담겼다. 다행히 시민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사건을 분석하고 정보를 모으면서 진실에 다가서려 했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비공개되었다.

이것이 부당하고 과도한 정보공개청구가 이루어지는 한국의 현실이다.

만약 한국에서 정보공개청구가 과도하게, 심지어 행정력이 낭비될 정도로 이루어진다면, 그 책임은 시민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봤듯이 정부가 사회적 통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서 시민들 탓만 한다면, 이것은 꼬리가 머리를 흔들려는 꼴이다.

사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들은 이미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어떤 피로를 느끼는지 시민이 체감할 수 없다. 정부가 무슨 사업을 어떤 절차를 밟아 추진하는지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알맹이 없는 문서 껍데기만 공개하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지금 검찰은 이재명 대표의 도지사 시절 관용차 운행이나 업무추진비를 문제 삼는데, 단체장이나 기관장들의 관용차량 운행일지나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공개된다면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아도 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정보공개법, 알권리 확충되게 바꿔야

한국 공직사회의 밀실행정과 부패를 생각하면 사회통념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공개를 요구한다. 시민의 알권리는 정부가 임의적으로 판단해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의 원천이자 정책정당성의 기반이기에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기준을 만들 사안이 아니다. 사회통념 역시 시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이지 정부가 필요할 때 끌어다 쓰는 알리바이가 아니다. 정보공개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면 그 방향은 시민의 알권리를 더 많이 보장하고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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