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서울시 논현동 플라야 라운지에서는 히비키의 철학을 감각으로 경험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예술과 위스키, 미식이 한 흐름으로 연결된 아트 다이닝으로, 단 10명을 위한 이 자리는 히비키가 말하는 ‘조화’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줬다.

행사의 첫 장은 허명욱 작가의 전시였다. 공간에는 강판, 캔버스, 패브릭, 스틱 등 작가의 주요 시리즈가 자리했고, 참가자들은 도슨트의 설명을 따라 작품의 표면 아래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을 들여다보았다. 작가는 매일 아침 자연에서 감지한 기운으로 “오늘의 색”을 만들고, 그 색을 금속판이나 캔버스, 삼베 위에 수십 번 겹쳐 칠해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옻칠은 얇게 올리고, 기다리고, 다시 올리는 과정이 반복되는 재료이기에, 이 느린 시간들이 쌓이며 작품은 단순한 색의 표면을 넘어 ‘시간의 밀도’를 가진 존재가 된다.
옻칠이라는 재료의 성질 또한 인상 깊었다. 같은 색으로 시작해도 사용하는 환경과 손길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187개의 옻칠함’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동일하게 제작된 187개의 상자가 6개월 뒤 모두 다른 노란빛으로 변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시간과 환경이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가 곧 개성이 된다는 이 개념은 위스키의 숙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전시 감상을 마친 후 3층 다이닝 공간으로 이동하니, 테이블 위에는 산토리의 대표 위스키 하쿠슈 12년, 야마자키 12년, 히비키 21년이 놓여 있었다. 예술로 ‘작품의 시간’을 본 뒤, 이제는 위스키의 ‘숙성된 시간’을 향과 맛으로 느껴볼 순서였다. 테이스팅은 산토리 앰배서더 문선미 바텐더가 진행했다. 그는 히비키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즉 자연과 사람, 향과 맛, 기술과 시간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어지는 조화의 철학을 먼저 소개했다. 히비키 병이 24절기를 담은 24각으로 이루어진 이유 역시 그 순환성과 리듬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테이스팅은 ‘하쿠슈 12년’이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하쿠슈 25년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지며, 하쿠슈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내 주요 유통 채널에서는 품귀 현상도 나타났다. 울창한 숲에 자리한 증류소에서 태어난 위스키답게, 잔을 가져가는 순간부터 신선한 초록의 향이 피어올랐다. 배·사과 같은 산뜻한 과일 향 위로 민트, 바질, 녹차의 상쾌한 노트가 차분히 이어지고, 끝에는 아주 여린 피트 스모크가 스친다. 본연의 배경준 셰프는 이 하쿠슈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해조류 칩과 줄무늬 전갱이 회 등 바다의 감칠맛을 담은 메뉴를 페어링으로 준비했다. 산뜻함과 감칠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어 등장한 야마자키 12년은 분위기를 한층 더 깊고 묵직하게 만들었다. 아메리칸 오크, 셰리 캐스크, 미즈나라 캐스크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레이어 덕분에 잘 익은 과일, 바닐라, 코코넛, 백단향 등 동양적 뉘앙스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이에 맞춰 배 셰프는 버섯 비빔밥과 제주 흑돼지를 내놓았다. 버섯의 흙내음과 돼지고기의 고소한 단맛이 야마자키의 우디한 깊이와 포개지며 또 다른 조화를 완성했다.

행사의 절정은 ‘히비키 21년’이었다. 잔에 코를 가까이 가져가자 꿀·벌집·캐러멜·절인 과일의 향이 농밀하게 피어올랐고, 한 모금 머금으면 미즈나라 캐스크 특유의 두터운 바디가 천천히 펼쳐졌다. 이날의 페어링 메뉴인 훈연 ‘봉화 오리’는 그 농도를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연기 향과 깊이 있는 지방의 풍미가 히비키 21년의 묵직한 여운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긴 피니시를 남겼다.
전시에서 시작해 테이스팅을 거쳐 미식으로 완성되는 이 흐름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허명욱 작가의 작품이 보여준 ‘시간의 레이어’, 산토리 위스키가 담고 있는 ‘숙성과 조화의 철학’, 본연의 요리가 구현한 ‘균형’은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쌓이고, 어떻게 울리고, 어떻게 여운이 되는지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히비키와 본연이 함께한 아트 다이닝은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진행되며, 캐치테이블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Tip. 문선미 바텐더의 위스키 즐기는 법

위스키는 도수가 높은 만큼 첫 모금에서 자극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잔을 들었다고 바로 삼키기보다는 입안 전체가 적실 만큼 머금고 잠시 기다리는 것이 좋다. 침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알코올이 부드럽게 희석되고, 체온과 만나 온도가 오르면 숨겨져 있던 향들이 차분히 열린다. 이때 위스키를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면 혀의 앞·옆·뒤쪽을 지나며 서로 다른 풍미가 단계적으로 이어진다. 삼킨 뒤에는 코로 천천히 숨을 내쉬며 여운을 확인한다. 이 순간 올라오는 향이 위스키의 피니시로, 벌꿀이나 익은 과일, 바닐라, 스모크 같은 한층 깊은 향이 드러난다. 잔은 과하게 돌릴 필요는 없고, 가볍게 흔들어 알코올의 날카로운 향만 살짝 날려주면 향이 더 또렷하게 열린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넣을 필요는 없으며, 양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피어오르는 향과 변화를 즐겨보길 권한다.






![시계도 에르메스가 만들면 남다르다... 올겨울을 위한 신작 열전 [더 하이엔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10/0f949792-4b18-46c4-b739-0e20ae6a135f.jpg)
![글과 여행이 빚어낸 몽블랑의 홀리데이 [더 하이엔드]](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10/ef1ff473-33b7-4242-b92c-4801b069a72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