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김보미(43)씨가 15년 전인 2009년 4월 서울의 한 학교로 교생실습을 갔다가 생긴 일이다. 경상도에서 자라 서울에서 교대를 졸업한 뒤 처음으로 교탁 앞에서 아이들을 마주한 자리였다. 혹시나 사투리가 튀어나올까봐 조심, 또 조심했다.
‘OX 퀴즈’를 준비한 김씨는 말했다. “여러분! 맞으면 꽁표(공표), 틀리면 꼽표(곱표) 해주세요.”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라 아직 기호 표기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희들. 초등학교 2학년이 꽁표, 꼽표도 모르니? 꽁표는 동그라미고 꼽표는 엑스 알지?”
아이들은 연신 갸우뚱거렸다. 사투리를 알아들을 리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생실습을 지켜보던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에게 호출당했다. “김 선생님! 사투리부터 고치세요. 꽁표, 꼽표가 뭡니까. 동그라미표, 가위표라고 하셔야죠.”
김씨는 순간 너무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왜 공표, 곱표가 사투리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공표(空標)는 경상도에서 동그라미표, 곱표(곱標)는 곱셈을 나타내는 기호 ‘×’에서 따와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는 가위표(엑스표)였다.
이 이야기는 〈사투리 어벤저스〉에게 독자가 직접 보낸 사연 중 하나다. 본지는 지난 10월부터 약 2주간 온라인으로 사투리와 관련된 사연을 모집했다. 총 183개 사연이 모였다.
사연을 읽다 보니 깨달았다. 진정한 사투리 고수는 전국 팔도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모두였다. ‘사투리 때문에 이런 오해도 생겼다고?’ 웃음 짓게 만드는 에피소드와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등 8개 사연을 골라 소개한다.
같은 전라도인데 이렇게 다르다고?
김씨가 서울에서 생활한 지도 10여 년, 지금은 사투리를 잘 안 쓴다고 생각하지만 고향 친구들 말에 따르면 ‘아직 완벽한 사투리를 쓴다’고.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투리는 ‘맞나’다. 질문할 때, 공감할 때, 화날 때 등 문장 끝마다 붙여도 되는 마법의 단어다. 선생님이다 보니 수업 시간에는 가급적 사투리 억양도 자제하려고 하지만 급하거나 흥분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곤 한다. 어쩌다가 사투리 억양으로 빨리 말할 때 아이들은 “선생님 화났어요?” 묻는단다. 그래도 사투리가 좋다. 그는 “사투리는 저의 과거이자 인생 흔적”이라며 “이 친근한 말이 없어지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