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공감] 어차피 정답은 없다면서

2024-12-12

궁금하면 언제든 검색하고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간편함 덕분인가, 틈날 때마다 재미나 정보를 주는 짧은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주의로 서로에 대한 깊은 질문은 실례가 되어서? 요즘은 궁금한 걸 사람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잘 생각나지 않는 것들을 끝까지 떠올리려 애쓰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드는 궁금증은 바로 검색해서 답을 찾고, 검색된 대로 잠시만 알고 바로 잊는다. 삶을 통해 배워야 하는 지혜가 담긴 사람이 몸소 해본 경험을 직접 전해 듣고 배우기보다는, 원하는 키워드로 검색하고 눈으로만 습득한다. 얼굴을 마주 보고 사람이 전해주지 않아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공들이지 않고도 배울 수 있다.

그래서일 거다. 인내하지 않고 얻어 낸 정보는 많은데, 기억 속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아는 건 늘었고 지식이 많아 똑똑해졌음에도 깊은 대화는 어렵고 문맥 파악이 쉽지 않으며 대화하다 보면 어딘가 얕다. 정보는 많고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많은데,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희소한 이유가.

세상에 정답이 없음을 인식하고 나만의 정답, 나만의 사는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진짜 원하는 것, 나의 꿈 찾기가 어렵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사방에 널려 있다. 최근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는 친구는 ‘강의 잘하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연습했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는 ‘내 아이 큰 키로 키우는 법’, ‘이유식 만드는 법’을 검색하고 따라 한다고 했다.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방법이 널려 있기에 그 방법을 검색해서 취사선택하면 되고, 알고리즘은 취향을 반영해서 좋은 방법, 더 좋은 방법,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나 역시 글쓰기 특강을 할 때는 ‘글 잘 쓰는 법’ 같은 건 검색창과 유튜브에서 잘 알려줄 테니, 따로 찾아보시고 조용한 시간에 혼자 외우라고 말씀드린다.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문제다. 쉽게 검색할 수 있어서 더더욱 문제가 되어 버린다. 옷을 살 때도, 신발을 살 때도 그 많은 후보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최근 날이 추워져서 털이 복슬한 부츠를 사려고 검색창에 어그부츠를 검색했다. 몇천 원부터 몇십만 원 하는 성능 모를 재질과 정말 조금씩 다르게 생긴 부츠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나는 핸드폰을 놓고 말았다. 부츠 하나 사는데 아무거나 사면 그만이지만, 그 아무거나 역시 선택이 필요하다. 무조건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비싸다고 좋은 것도 아니지만,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그렇지만 가성비 좋아야 하고,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 사이트를 찾아내야 한다. 아, 한 시간 후, 부츠를 사려고 시작한 나의 쇼핑은 립스틱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람이 늘 옳게만 사는 건 아니며 우리 일상의 가장 소중한 정답이 행복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선택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함만을 추구하는 세상은 이기주의가 판치는 끔찍한 천국이 될 것 같다. 과정을 즐기라고 하기에는 선택지가 너무나도 많아서 금방 산만해지므로, 아닌 건 아님을 표시할 수 있는 선을 그어나갈 필요가 있다. 빨간 색연필로 아닌 것들을 성실하고 꾸준히 그어가다 보면, 나를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가 가장 마지막에 남지 않을까.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에 늦은 감이 있다면, 지금부터 싫어하는 걸 하나씩 그어나가면 된다. 죽어도 선택할 수 없는 선택, 피하고 싶은 사람들, 도저히 집중되지 않는 시간,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 내적 혐오를 일으키는 상황과 장면들을 하나씩 그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올여름이 유난히도 무덥고 길어서, 올겨울 무시무시하게 추울 거라고 잔뜩 쫄았는데, 생각보다 따뜻해서 놀라는 중이다. 세상엔 참, 놀랄 일도 많고 별의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이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에 잔잔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싫어하는 것들을 찬찬히 써보면서 머리를 비워보는 건 어떨까.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비워내기 시작하면 새해쯤엔 새로운 소망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부디, 우리 모두의 내일이 안녕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김현주 울산 청년 작가 커뮤니티 W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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