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더 아찔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던 딸이 대뜸 말합니다. “엄마, 비상계엄이래!” 너무도 생뚱맞은 소리라, 누가 친 장난이냐고 했습니다. 그가 방송에 나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채널을 정규방송으로 돌렸지요. 정말로 그가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뭐지!’ 싶습니다. ‘대체 왜?’ 방송을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채널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계속 지켜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에게 국회로 집결하라고 했답니다.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듭니다. 그러던 중 헬기가 떴고, 군인들이 내립니다.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몰려듭니다. 국회 안팎의 모습이 동시에 중계됩니다. TV에 비치는 국회 본회의장 안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151명이 넘어야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의결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본회의장 안은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창을 깨는 계엄군의 모습에 가슴이 더 조마조마해지는데, 모인 의원이 191명이랍니다. 다행입니다. ‘어서 계엄 해제 결의안을 상정하지 않고 뭐 하는 거지!’ 싶습니다.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뒤, 계엄군이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은 가시지 않습니다. 예측 불가한 그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래서 무서워집니다. 불안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할 때 발생합니다. 예측할 수 없으니, 적절한 대응책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할까 싶어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그날 밤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대체, 왜!’에 대한 의문이 하나씩 풀립니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더 아찔해집니다. 국회의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에 …, 만약에 …. 그러다 기억은 과거로 날아갑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79년 10월 26일 아침, 등굣길이었습니다. 울산교 남쪽 마을에 살던 저는 다리를 건너고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을 지나야 닿게 되는 여학교를 다녔죠. 그날도 중앙시장 길을 지나는데, 어느 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대통령 서거’(대통령 유고였나!)라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사건에 얼핏 웃음 같은 게 나왔던 거 같습니다.
당시 내게 정치적인 의식이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만화영화 ‘캔디’의 방송 시간을 기다렸고, 초등학교 시절 동네 만화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알게 된 얕은 야구 지식으로 고교야구를 좋아했으며, 오후 10시경 방송되던 외화 시리즈에 빠져 있던 그런 별생각 없는 중학생이었으니까요.
뉴스에 잠깐 귀를 기울이다, 다시 한참을 걸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교실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죠. 항상 반듯한 모습을 보였던 동기생이 책상에 엎드려 웁니다. 나라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침 조회에서 담임선생님은 별일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1979년 그날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열네 살 아이가 흥미로운 사건(?)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 말입니다. 45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와 그들이 역사를 돌려놓으려 시도했습니다. 저 멀리 있는 것 같던 역사가, 그 역사의 시간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원영미 울산대학교 강사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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