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을 그만 좀 괴롭히자

2025-04-06

네덜란드에 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녀와 딸 가족을 방문한 선배 내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흥미로운 기행담에 포함된 네덜란드 어린이들의 별세계 같은 교육환경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교수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과문이 부끄러웠다. 대한민국 교육 현실과 교차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새삼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학교 갈 때도 집에 올 때도 책가방이 없더라’ ‘선생님과 학교를 완전히 믿는다’ ‘과외 같은 건 전혀 없다’ ‘수영과 축구 같은 체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가르치더라’ ‘모든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한다.’ 선배 내외의 관찰과 설명을 접하고 여러 정보를 뒤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아이들은 그저 간식거리와 음료수만 챙겨 학교에 다녔다. 책가방은 아예 없었다. 가방이 없으니 집에 책을 가져올 수도 없었고, 당연히 예습·복습은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었다.” 예·복습과 과외의 개념이 애초 없다.(정현숙,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

네덜란드 교육 과외·가방 없어

학원 고시 치르는 한국과 대비

어린아이의 시간 다시는 안 와

네덜란드 초등교육제도는 만 4세에서 12세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유아 교육 과정을 포함하여 총 8년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학업량이 적고 성적 점수를 강조하지 않으니 학업 스트레스가 적어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글자나 숫자 공부보다는 놀이를 통해 양보, 협동, 나눔, 또래 친구들과 관계, 교사와 친화력, 학교생활 적응력에 교육의 초점을 맞춘다.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임을 깨닫고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우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키지 않고 그 학년을 다시 다니게 한다. 유급인 셈이다.

네덜란드 어린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어린이는 과외 학원을 오가느라 바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손녀딸 학급에는 한 주일에 13개 과외를 받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과외에 쫓겨서 함께 어울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원 과외는 유형과 속도에서 과열을 넘어 광란으로 치닫고 있다. 4세 아이가 영어 학원 입성을 위해 시험(‘4세 고시’)을 치른다. 수요가 넘쳐나서 불합격한 아이가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대기상태다(EBS 뉴스, 2023년 8월 9일). 지난 3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유명 초등 수학·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7세 고시’가 있고, ‘초등생  의대반’도 있다. 4년제 대학 연평균 등록금의 4배 수준에 이른 영어학원의 연간 비용, 부모의 소득에 따른 격차는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 효과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연필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 아이가 난데없이 영어시험을 치르고 학원 합격을 통지받거나 학원에서 수업받을 때 어떤 심정이 될까. 그 의미를 알기는 알까. 7세 어린이가 ‘고시’에 합격하거나 불합격할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만족감·성취감·자존감 같은 것일까, 좌절감·열패감·혼란함 같은 것일까. 어른들의 잘못된 욕구 충족과 경쟁심이 낳는 후유증에 어린아이들이 시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친구들과 함께 뛰고 뒹굴며 희로애락의 관계를 맺는 시절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의술은 인술’이어야 하는 믿음과 가치를 가르치려고 ‘초등생 의대반’이 운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교육의 무분별한 불량 과장 질주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멈추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어린이의 흥미를 발견하고 격려하는 교육이 아니고, 줄 세우기 경쟁의 도구로 만드는 교육은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교육이 아니다. 고 이어령 선생은 “진리는 모호한 것”이고 “답은 하나가 아니며” “곡선으로 방황하되, 목표는 직선으로 가라”면서 “한 방향으로 달리면 일등은 하나밖에 없지만 360도의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이 모두 일등이 될 수 있다”고 했다.(2005년 이화여대 인문과학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강연) ‘세상에서 최고’가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을 귀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어린이에게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시기에만 향유할 수 있는 천진무구의 시간을 어른들의 욕심으로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마음껏 꿈을 키우고 친구들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기본예절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최고 가치를 지니는 시간이다. 과도한 과외, 무모한 경쟁, 암기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잠재한 각양각색의 재능을 보살피고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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