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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관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잠자리에서 엄마가 읽어준 책, 표지가 너덜거리도록 다시 꺼내 보던 책, 부모가 돼 아이에게 보여준 책까지. 이런 기억 때문일까. 어른이 돼서도 그림책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향하는 곳, 그림책 전문 서점 서울 마포구 이루리북스에 방문했다.
이루리북스는 이루리 그림책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이다. 이루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루리’라는 뜻을 담아 지은 필명이다. 이루리 작가는 대학생 때부터 소설, 드라마 대본 등을 꾸준히 써왔다. 서른살에 아동 독서지도사를 양성하는 일을 시작하며 잊고 살던 그림책을 다시 만났다. ‘이렇게 쉽고, 짧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니!’ 그림책에 푹 빠진 이 작가는 더 많은 사람에게 그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 그림책 전문 출판사를 세우고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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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있는 그림책은 3000여종.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책이 마련돼 있다. 아동이 많이 올 것 같지만 손님 대부분이 성인 여성이다. 서점을 찾은 배모니카씨(27)는 “일상 속 순간을 감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림책을 좋아한다”며 “얼마 전엔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을 다룬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책 읽는 사람이 줄며 출판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림책 시장은 홀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림책 아카이브 ‘그림책박물관’에 등록된 2019년 출간 국내 작품은 780종이었는데, 2024년에는 1041종을 기록했다. 이 작가는 “심리치료나 미술 활동을 진행하는 그림책 활동가를 양성하는 기관도 많이 생겨났다”며 그림책 시장의 성장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편견을 깨면 그림책에 다가가는 게 쉬워진다고 말한다.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엔 어른은 물론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책도 많이 나온다. 삶·죽음·공허함을 다루며 어른의 마음을 다독이는 책도 적지 않다. 교양 도서를 읽듯 과학적 지식이나 인물 생애를 다룬 그림책을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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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그림이 글을 보조한다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그림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글은 한 페이지에 한두줄, 혹은 전혀 없을 정도다. 그림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대사만 실은 그림책도 많다. 인물의 행동과 감정, 이야기의 흐름을 모두 그림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그림책을 볼 때 글만 빠르게 읽고 넘기는 게 아니라 그림을 천천히 감상해보시라”고 조언했다.
책 관련 단체들이 결성한 ‘책의 해 추진단’은 올해를 ‘그림책의 해’로 정했다. 내 생애 첫 책이었을 그 옛날 그림책을 떠올리며, 훌쩍 어른이 된 나에게 그림책 한권 선물해보면 어떨까.
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 사진=백승철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