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를 거론하며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합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들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이는 핵 군축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핵 확산 등과 관련해 정확한 인식을 정립하지 않은 채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진행한 실시간 화상연설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비핵화가 가능할지 알고 싶은데,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020년)선거 전에 우리 두 국가가 비핵화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이런 논의를 계속했다면)중국도 따라왔을 것”이라며 “푸틴 역시 이를 원했고, 우리는 중국과도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비핵화’로 표현했으나 이는 위협 감소를 위해 전략 핵무기를 상호 감축하는 핵 군축(nuclear disarmament)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는 핵능력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핵무기와 관련해 배타적 권한을 행사하는 NPT상 합법적 핵보유국들이 스스로 핵을 내려놓는 상황 자체를 상정하기 어렵다. 트럼프 스스로도 이를 “핵을 줄이는 방안(cutting way back on nuclear)”으로 부연했다.
이는 트럼프의 인식 속에 핵무기나 핵 확산과 관련된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다소 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는 그의 이런 생각이 곧 북한 비핵화 협상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앞서 트럼프는 취임 당일인 지난 20일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표현했다. 이는 한국어로는 똑같은 핵보유국으로 번역되지만, NPT 체제상 인정하는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북한의 핵무기 생산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북한에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의 경우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다는 뜻으로, 이는 역내 ‘핵 도미노’ 등 NPT 체제의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곧 대북 정책 리뷰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초기에 미 측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확실한 정보와 목표를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탄핵 국면에서 여러 외교적 한계가 존재하지만, 각급에서 트럼프의 외교안보라인을 집중 공략해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뜻한다”(2018년 6월 13일 미 ABC 방송 인터뷰)고 밝혔다. 스스로도 비핵화에 대해 이 같은 인식을 표방했다는 점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