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타임스 = 방재영 기자) 인천아트플랫폼이 인공지능(AI)에 대한 예술적 질문을 주제로 한 기획전 ‘의문의 AI (Interrogative AI)’를 오는 20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전시장 1(B)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해외문화진흥원(Institut Français)의 후원을 받은 국제미디어 전시로, 한국·프랑스·대만·싱가포르 4개국 9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번 전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후 현대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식과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예술적으로 탐구한다. AI가 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흔들며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인류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예술계에서도 AI는 저자성(authorship)과 창작 주체, 저작권,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 등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전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술의 발전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예술의 언어로 다시 묻는다.
‘의문의 AI’는 단순히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거나, AI 생성 이미지의 시각적 현란함이나 기괴함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AI 시대가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기후위기와 식민의 역사, 창작 주체와 범위, 기술의 발전이 예술과 맺는 복잡한 관계 등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프랑스 작가 기욤 포르(Guillaume Faure)의 ‘에코’는 관람객이 AI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참여형 작업이다. 관람객이 대화 부스에 들어서면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치고, 말을 시작하면 목소리의 음조에 따라 AI가 반응한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나와 마주 보고, 나와 나누는 대화’는 낯설고 묘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필름 메이커인 김민정 작가의 ‘모든 삶을 위한 라이브 비디오’는 불꽃놀이인 줄 알았던 아름다운 유튜브 쇼츠 영상이 사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백린탄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제작하게 된 작품이다. 불꽃놀이와 백린탄 폭발 영상이 겹쳐 바닥에 투사되는 이 작품은, AI 이미지가 현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만드는 현상을 카메라 옵스큐라에 거꾸로 맺히는 상에 견준다. 실시간 영상이 아닌데 ‘라이브 비디오’라고 붙인 역설적인 제목 역시 관람객의 인식을 환기한다. 매체의 형식 실험에 탁월한 작가가 처음으로 촬영 과정 없이 완성한 영상 작품이다.

김은설 작가의 ‘청각장애 인공지능 학습 #2’는 인공지능이 언어를 익히는 과정과 청각장애를 지닌 작가 자신이 언어를 배워온 과정을 겹쳐 본 작업이다. 딥러닝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여전히 오류를 내는 AI의 모습은, 타인의 입술과 표정을 읽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의 모습에 비유된다.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지닌 AI가 청각장애를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이 신선한 반전이다.

프랑스 작가 다비드 파티(David Fathi)의 ‘기계는 유령을 필요로 한다: 화이트 큐브 콜라주’는 AI의 잠재공간이 실제로는 서구 중심의 시각적 규범과 편향으로 채워져 있음을 비판한다. AI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각 언어를 반복적으로 조합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예술을 해방시키기보다 기존의 미학적 틀을 강화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AI는 결국 과거의 ‘유령’들이 데이터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다프네 난 르 세르장(Daphné Nan Le Sergent)의 ‘실리콘 섬과 전쟁’은 AI 생성 이미지까지 도달한 디지털 이미지의 역사를 반도체 산업의 궤적과 연결한 영상 에세이다. 카메라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점점 더 미세해진다. 반도체 산업을 선도한 일본·한국·대만의 실리콘 삼각지대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 식민과 저항, 블루스와 랩, 프랑스어의 아프리카 사투리와 표준 영어 나래이션이 교차된다. 경쾌한 리듬 속에 식민의 역사와 경제패권을 다루는 서사가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대만의 심플 누들 아트(Simple Noodle Art)와 샨보이 첸(Shanboy Chen)이 협업한 ‘프롬프트: 듀프 아트’는 최근 부상하는 듀프(Dupe) 문화를 언급하면서, AI 시대의 ‘독창성’ 개념과 예술 작품의 ‘원본의 가치’를 재치 있게 되묻는다. 작가는 유튜브에서 추상화를 쉽게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영상을 보면서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다시 AI에 입력해 유사 이미지를 대량 생성하게 한다. 생성된 이미지 중 일부는 다시 실제 회화로 제작된다. 이 과정을 통해 ‘프롬프트와 데이터셋이 새로운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예술에서 진정한 독창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염인화 작가의 ‘솔라소닉 밴드’는 확장현실(XR)을 기반으로 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다. 작품 속에는 AI로 생성된 밴드 멤버들이 등장해 기후 위기의 다섯 영역(대기권, 수권, 암석권, 빙하권, 생물권)을 순회하며 공연한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밴드의 리더(악장)가 되어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악보를 조정하게 되고 이에 따라 공연 시나리오가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밴드의 공연은 관람객이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기후 위기를 비롯하여 기술과 예술 간의 관계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위기’를 감각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와 벨라바스(François Bellabas)의 ‘프로토마톤’은 분해된 컴퓨터와 카메라, 버튼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이 특정 프롬프트와 연결된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가 전시 공간과 인물을 촬영하고, AI 확산 알고리즘이 버튼 명령에 따라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재해석한다. 변형과 재해석을 거듭한 결과물은 자동 저장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드러내고, 기계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교차하는 새로운 초상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싱가포르 작가 호 루이 안(Ho Rui An)의 ‘역사의 형상들과 지능의 토대’는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를 식민주의적 통치 구조와 연결한 영상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AI가 과거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그 기원과 맥락을 망각한 채, 진정한 이해 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 내는 과정을 ‘노이즈의 재편성’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이를 인간의 기억 상실에 빗대며, 진정한 지능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복원하고 윤리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힘이라고 말한다.

이번 ‘의문의 AI’전시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은 사회적, 윤리적, 역사적 문제를 예술로 사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령어에 따라 반응할 뿐 스스로 질문하지도, 창조하지 못하는 AI와 달리, 인간은 호기심을 갖고, 의문을 품고, 상상할 줄 안다. 또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면하여 변화의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매주 월요일, 새해 첫 날(1/1) 휴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관람료는 무료이다. 주말에는 전시 해설(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되니 자세한 정보는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와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