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어떤 시는 광활하다

2024-07-07

여름의 촉감, 여름의 냄새, 여름의 소리, 여름의 색깔이 짧은 시 한편에 고루 담겨 있다. 때는 여름의 한복판, “바람 한 점 없는 밤”이다. 고양이는 덜 더운 누다락으로 피신하고, 화자는 모기향 앞에서 벽을 마주하고 수련 중이다. 눈 감고 5분이란 오묘한 시간이 흐르고, 화자는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간다. 감은 눈 속에서 펼쳐진 세계는 가을, 한밤이다. 누가 죽었을까. 꽃상여가 벼이삭을 스치며 내는 소리, 망자를 보내는 산 자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어허 어하……” 다시 눈 뜨면 코끝엔 모기향 냄새, 여름은 가을밤처럼 돌연 깊어져 있으리라.

눈 감으면 떠오른다. 어릴 적 모기향에서 연기가 올라갈 때 나던 냄새, 선풍기는 더운 바람을 만들어내고 나를 향해 부채질을 해주던 할머니의 손이 느려지다 멈추면 여름이 한 걸음 더 다가와 들숨에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위에 지친 식구들이 숨 죽은 파처럼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들던 저녁. 스산했다, 그때! 이 시를 읽으면 그때, 그 기분이 떠오른다. 냉방장치가 갖춰진 집에서 대문 열어둘 일 없이 사는 요새 사람들에겐 고리짝 적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는 광활하다. 여백이 빈 들판처럼 놓여 있어 읽는 이를 시 속에 홀로 서 있게 한다. 너무 고요해 심장 박동마저 들릴 것 같다. 여백이란 생각을 부려놓기에도 외로움을 세워두기에도 좋은 ‘장소’다. 박용래가 시에 풀어놓은 여백은 종소리가 길게 지나간 뒤 소리의 자취를 더듬어보다 마주하게 되는 여백 같다. 계절도, 계절 속에 사는 사람도 깊어지게 한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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