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핵잠모듈 '나쁜 거래'…"인공위성·탄도미사일 기술도 이전"

2025-09-16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에서 식량·원유·비료 등을 받은 덕분에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7% 성장했다. 2016년 이후 가장 높다. 그러나 정부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북한에 첨단 무기와 핵심 군사 기술을 건네는 데 소극적일 것으로 관측해 왔다.

지난해 6월 북·러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북·러 신조약)을 체결하자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여왔다. 정부는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직간접적으로 경고해 왔다. 레드라인은 핵추진 잠수함 기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관련 기술, 신형 전투기 등 ‘3종 세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친다.

그러나 우리의 우려와 달리 북한·러시아는 ‘나쁜 거래’를 이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병력·무기를 대면, 러시아가 식량·에너지뿐만 아니라 군사 기술로 갚는 방식의 거래다. 핵잠용 모듈의 이전이 확인된다면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확실히 넘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인공위성 관련 기술과 탄도미사일 정확도 개선 기술 등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에 무기와 군사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 특히 핵잠용 모듈 제공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기반한 국제 핵 비확산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일 수 있다. 북한은 NPT 가입국이 아니지만, 러시아는 가입국이다. 러시아는 NPT 체제에서도 합법적 핵보유국(P5)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비확산 체제 안정화를 중시하는 기조였다. 이런 이유로 모듈 이전은 북한은 물론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국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핵잠 개발에 러시아가 관여한 게 밝혀진다면 NPT 체제는 안에서 무너지게 된다”며 “북한으로서는 핵무장의 마지막 단추를 끼우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바라는 러시아의 핵잠용 원자로는 OK-650이 거론된다. OK-650은 농축도 21~45% 우라늄을 넣으면 30~40년간 190MW 출력을 낸다. 2001년 퇴역을 시작한 러시아의 공격 핵잠인 프로젝트 971 슈카-B(아쿨라급) 초기형 5척의 원자로도 OK-650이다. H I 서튼,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등 국내외 잠수함 전문가들은 프로젝트 971 슈카-B의 제원(길이 110m·수중 배수량 1만2000t)이 북한이 건조 중인 핵잠과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러시아는 퇴역 핵잠을 처리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 세계원자력산업협회(WNA)에 따르면 1950~2003년 소련·러시아는 핵잠 248척, 핵추진 수상함 5척, 핵추진 쇄빙선 9척을 지었다. 이들 함정에 들어간 원자로가 468개다. 냉전이 끝난 뒤 이들 핵추진 함정의 상당수가 퇴역했고, 퇴역 핵잠은 특수시설에서 오랫동안 방치됐다. 그 특수 시설 중 하나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멀지 않은 라즈보이니크 만에 있는데, 북한과 가깝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은 지난해까지 202척의 핵잠을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부 내에선 러시아의 핵잠용 모듈이 북한에 실제 넘어갔다는 평가를 하기엔 이르다는 시각이 있다. 군 당국은 신빙성이 높다고 보지만 다른 정부기관은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사실상 핵폐기물인 러시아의 핵잠용 모듈을 북한으로 반출·이동하면 방사성 물질 등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 이 같은 흔적이 포착되지 않았다. 또 동맹·우방국에서 첩보를 확인했다는 통보가 우리 정부에 온 게 없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이 지난 11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비공개 보고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할 무렵에 북한이 파병과 무기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급부를 충분히 받지 못해 상당히 섭섭해한다”는 평가를 했다.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핵심 군사 기술이 이전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 실제 러시아가 핵잠용 모듈을 제공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바탕으로 핵잠용 원자로를 개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과거에 미국과 소련도 첫 핵잠의 설계부터 배치까지 5년 넘게 걸렸다. 핵잠은 추진기관의 방사성 물질 차폐, 정숙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장기간 고압을 견디는 소재 등 각종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의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핵잠은 배관과 압력 용기가 중요한데 북한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현재 건조 중인 핵잠에 러시아 모듈을 넣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5대 과업 중 하나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를 꼽았다. 올해까지 핵잠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배치하겠다는 뜻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러시아 ‘중고’ 모듈은 재활용이 어렵다. 퇴역한 핵잠의 원자로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러시아 핵잠용 모듈을 무리하게 탑재하면 핵잠이 '움직이는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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