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동네 막국수 가게에 켜둔 텔레비전에선 9시 뉴스가 방영 중이었고,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담화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감자전을 앞에 두고 소주를 마시던 아저씨들이 사투리 억양으로 “전두환이 저거” “어데서 비장한 척을 해쌓노” 야유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하고 맺음말하던 순간 한 분이 화면을 향해 “에라이, 고마 치아라” 일갈했다. 다른 탁자의 손님들도 쿡쿡 웃었다. 주방에서 수육을 썰던 아저씨의 입꼬리 또한 올라가 있었다. 담화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브라운관 안과 밖의 부조화가 왠지 재미났다. 식당 안에 감돌던 ‘동조하는 웃음’의 공기가 어린 마음에도 정겨웠다.
이듬해엔 이런 일이 있었다. 초겨울 저녁, 밖에서 놀다 만화영화 방영 시간에 귀가하니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김장하고 계셨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자 익숙한 만화 주제가 대신 웬 아나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 부부가 소년·소녀 가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특집 중계방송이 편성됐단다. 같은 시간 전국에서 터져 나왔을, 만화영화 기다리던 내 또래 시청자들의 원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은 어린 손님들을 둘러앉힌 채 손주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예쁘지?” 했다.
“고아들을 앉혀 놓고 자기 핏줄 자랑하다니 제정신이야?” 한 분이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다 말고 분개하자 다른 분이 맞장구쳤다. “하여간 인성이….” 사진을 돌려가며 자세히 보라면서 아이의 손에 쥐여주기까지 하자 “으이구, 화상아” 탄식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브라운관 안과 밖의 부조화가 이번에도 코미디극 장면 같았다. 1학년 때 교실 정면에 걸린 대통령 사진을 가리키며 선생님이 “이분이 누구죠?” 묻자 누군가 “우리 삼촌이 그러는데 도둑놈이래요”라고 답한 장면은 실제 내 경험인지 아니면 책에서 본 에피소드인지 명확하지 않다. 외갓집에 가면 작은 외삼촌의 통기타 옆에 신문지로 겉표지를 싼 소책자들이 쌓여 있었고, 그중 한 권이 ‘각하 시리즈’가 수록된 유머 모음집이었다. 더러 모르는 어휘가 등장했던 데다 몇몇 유머 코드는 못 알아들었으면서도 “영구와 땡칠이”를 볼 때보다 한층 짜릿했다.
중학생이 되어 ‘광주사태’라 불렸던 학살에 관해 찾아 읽었다. 고문치사를 다룬 르포도 그 무렵 처음 접했다. 혼란스러웠다. 전두환이 불의한 통치자였음을 비로소 알게 돼서가 아니었다. 정치란 단어의 뜻조차 몰랐던 꼬맹이 시절에도 그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겨우내 이어진 청문회와 그의 백담사행을 듣고 봤으니까. 당혹스럽고 섬찟했던 지점은 어린 내가 은연중에 그를 잔혹한 존재가 아닌 우스운 존재로 상정했었다는 사실이다. 술 마시던 아저씨들이나 김치 담그던 주부들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던, 참새 시리즈와 더불어 유머집에 인기 레퍼토리로 등장하던 존재. 나의 웃음은 학살과 고문을 자행한 자를 희화화함으로써 도리어 인간화하는 데에 일조했던 걸까. 통상적으로 압제자는 자기 권위를 깎아내릴 유머를 검열하고 금하려 들 테지만 그 유머의 궁극적 수혜자는 어쩌면 압제자 본인 아닐까.
이 의문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 다만 ‘해학의 민족’ 일원으로 역사적 국면들을 지나오며 이건 알게 되었다. 웃음은 불의한 시절을 관통할 동안 저항의 불씨를 보존해 그것이 점화될 미래 시점까지 무사히 실어나르는 역할을 담당함을. 규제의 그물망이나 동원의 기획에 온전히 포획되지 못하며, 국가적 대의의 허울을 조각내는 동시에 공동체가 찢겨나가지 않게 이어붙이는 기능을 수행함을.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논문 쓰다 뛰쳐나온 연구자연합’ ‘뒤로 미루기 연합-그러나 더 미룰 수 없다’ 등의 문구가 적힌 깃발 아래 깔깔대며 하나 되던 순간만큼은 내가 다른 어딘가 아닌 이 사회 구성원이라서, 웃음으로 결집한 ‘우리’여서 좋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