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 시민의 개인정보

2025-12-17

지난 10월 미국 퓨리서치는 세계 시민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일상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계적으로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인식은 제법 특징적이었다. 한국은 빠른 확산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사람들의 비율이 조사 대상 25개국 중에서 가장 적었다. 전반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인은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실험하는 데 발 빠르고, 흐름에서 뒤처지면 안된다는 경계심도 크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정체성 인식, 인간관계, 또는 문화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이렇게 경쟁적으로 일상 안에 수용하고 있는 것을 과연 바람직하게만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빠른 속도로 일상을 파고드는 AI

인간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을까

안전한 개인정보는 주체성의 토대

감시의 내면화 끊임없이 경계해야

소셜미디어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소셜미디어가 스마트폰과 결합하면서 확산하던 시절, 이는 다방면으로 인류에게 찾아온 해방적 기술로 추앙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꽃피고, 권력을 민주화하고, 지리적 계층적 경계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꿈꾸어 왔던 이상사회가 기술로 인해 비로소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기업들이 앞장서서 화려한 이벤트를 열며 ‘공유’와 ‘개방’을 절대적으로 추종해야 할 가치의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언제부터인가 글로벌 IT기업의 리더들은 미래를 예시하는 세계인의 현자요 영웅처럼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의 피상화나 감시의 만연화, 숙고하는 인간 능력의 퇴화, 끝없는 양극화 등 학계나 비판적 언론의 경고도 있었지만, 이러한 메시지들은 곧 주변화되었고 ‘뒷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가져온 중첩적 사회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자 급기야 지난 12월 10일 호주 정부는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활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조치는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의 빠른 일상 침투는 인간의 주체성 (human agency)에 대해 숙고하게끔 한다. 각 개인이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국가경쟁력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위한 산업이나 인력의 육성에 정책적인 노력을 집중할 필요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류에게 닥친 변화가 어떠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을 우선 고려하면서 기술이 하지 못하는 나머지 역할에 인간을 위치시킬 것인가, 인간의 성장과 가치를 기준선으로 두고 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맞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모두가 한 번씩은 했으면 한다. 이것이 미디어 리터러시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세계가 전쟁인데 한가한 소리라고 치부한다면 더 큰 대가를 후에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유년기에 탈북하여 입시경쟁을 거쳐 대학생이 된 학생들과 만난 경험이 있다. 어떻게 입시를 치렀는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돌아온 것은 “수능이나 논술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고,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자기소개서 쓰는 일이었다”는 대답이었다. 나에 대해서 쓰는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스스로 자유로이 생각하기보다 외부의 잣대에 생각을 맞추고 할 말, 안 할 말 생각을 검열해야 하는 환경에서 주체적인 자기인식은 생기기 어렵다. 자유로이 나다울 수 있는 영역을 안전하게 갖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과 경험을 축적하는 창의성의 샘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등 미디어 기기는 개인의 기억, 관계, 취향이 오롯이 담겨있는 자아의 일부이다. 나보다 더 잘 나를 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적인 대화가 언제든 녹음되어 튀어나올 수 있고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위치 파악도 가능하며 나의 내밀한 생각이 어떻게 거대 인공지능으로 흘러들어가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개인의 판단이나 의견을 내는 일을 넘기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외장 하드가 된다. 스마트폰에 담긴 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사생활권(權)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것은 단순히 남이 나를 못 들여다보게 하는 방어막이 아니라 나다움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쿠팡 사태로 인해 개인정보를 지키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한껏 고양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유출항목이 무엇인지, 보상이나 소송은 어떻게 될 것인지, 쿠팡의 사주가 얼마나 괘씸한지에만 논의가 머무르는 것이 안타깝다. 모두의 인공지능을 외치면서도 공익적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공무원의 개인 휴대전화를 감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서는 정부의 이중 잣대는 사생활권에 관해 잘못된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전달한다. 개인정보를 지키는 일의 의미에 관해 사회적 논쟁이 더 거세게 일어나야 AI 강국이라는 비전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