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 6월 '이달의 재외동포'에 '모국 발전 앞장선 재일학도의용군' 박병헌 선정

2025-06-16

재외동포청(청장 이상덕)이 2025년 6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재일동포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인 박병헌(1928~2011년)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단장을 선정했다.

경남 함양 출신인 박병헌 전 단장은 1939년 12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이주한 뒤, 해방 후 재일동포 청년 운동을 시작으로, 민단의 리더로 성장하며 재일동포 권익 신장과 모국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 메이지대학교 재학 중 재일학도의용군 결성에 동참하며, 구국 전선에 직접 뛰어들었다. 미군에 배속돼 인천상륙작전에 처음 투입된 그는 이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해 본격적으로 용문산전투 등 격전지를 누비며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재일동포의 조국 수호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를 세웠고, 훗날 민단 중앙단장에 오른 뒤에는 참전 동지 및 단원들과 함께 일본의 민단 중앙회관 앞에도 기념비를 건립했다.

박 단장은 재일민단의 총무국장, 부단장을 거쳐 단장에 이르기까지 재일동포사회를 대표하는 리더로 활약하며 민족 단합과 모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70년 개최된 일본 오사카 엑스포(만국박람회) 한국관 설치를 위해 조직된 ‘재일한국인만국박람회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모금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한국관을 건립하고도 남을 정도인 7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이에 그는 모국의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모국가족 일본초청’ 사업을 추가로 기획해 1만 2천 명이 엑스포를 관람하도록 했고, 당시 한국관에는 총 625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외국 국가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의 흥행 기록을 썼다.

1985년 제38대 민단 단장에 당선된 그는 88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지원을 위해 결성된 후원회 명예회장을 맡아, 모금 성공의 관건이었던 일본 정부의 기부금 면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당시 재일동포 모금액 525억원은 체조 ‧ 수영 등 올림픽 경기장 건립 등에 쓰이며 올림픽 성공 개최를 견인했다.

1987년에는 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전 세계 동포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를 제안하고 각국의 동포 지도자 303명을 도쿄로 모아 회의를 열었고, 이는 현재 재외동포청이 매년 개최하는‘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태가 됐다.

박 전 단장은 일본에서 거둔 성공을 모국의 경제 발전과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데에도 적극 나섰다.

1973년 구로공단에 전자부품회사 ‘대성전기’를 설립해 일본에서 습득한 선진 기술과 자본을 모국에 들여와 우리나라 산업화에 일조했고, ‘재일한국투자협회’와 ‘신한은행’ 설립에도 참여해 재일동포 기업인들의 모국 투자 활성화 및 금융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그가 1987년 자신의 고향인 함양군에 기증한 벚나무 1만 2천 그루가 백운산 자락(16km 구간)에 심어져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백운산 벚꽃축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밖에 ‘운암장학회’를 설립해 자신의 고향 청소년 39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초등학교 학습 기자재 · 수학여행 경비 지원 등 고향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한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75년 보국훈장 삼일장, 1979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9년 체육훈장 청룡장, 199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이상덕 청장은 “박병헌 단장은 재외동포의 정체성과 권익을 지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다”며 “6월 호국 보훈의 달과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전 참전, 모국 투자와 후원 등 다방면에서 조국의 발전과 한민족 단합에 일평생을 바친 그를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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