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쟁의 거점 연해주의 심장 블라디보스토크
범도 루트 10기는 독립투쟁의 역사 현장을 살펴보고 탐구함으로써 현재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고,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및 하바롭스크주의 주도인 하바롭스크를 방문해 독립투쟁사의 중요 인물과 그 장소를 찾아보는 여정을 펼쳐갔다. 중국국경을 넘어 크라스키노의 단지동맹비를 참배하고 탐방 첫날은 연해주의 심장이라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밤늦게 도착해 짐을 풀고 하루 일정을 마쳤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과 첫 한인촌 개척리는 일제 치하를 벗어나고자 또는 국내 독립투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에 이주해 한인촌을 구성하고 정착한 후 수많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된 지역이다. 신한촌에는 기념비가 있어 참배하고 사해동포의 정신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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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의 지도자 이동휘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분으로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사망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보창학교를 설립하고 대한 광복군을 조직했으며 나자구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 1918년 극동지역에서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1921년에는 고려공산당 대표들과 함께 레닌과 회담했으며 1930년 국제혁명가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사회주의 계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업적에 비해 평가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동휘 선생과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라고 적힌 기념비는 최근 경기도에서 현지에 세운 기념비인데 눈에 덮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정성을 다해 손으로 눈을 쓸어내 비석에 조각된 이동휘 선생의 얼굴이 나타나게 하고 상석의 눈을 치워 새겨진 글을 읽으며 당시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을 정비한 후 가져간 태극기를 기념비 앞에 펼치고 이동휘 선생과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묵념을 한 뒤 기념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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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터와 권업신문사, 혁명광장, 잠수함박물관, 일본총영사관, 솔제니친 부두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브라디보스토크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하바롭스크에 가다
범도 루트 10기의 대표적 일정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 열차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에 걸쳐 있다. 전 구간을 가려면 7박 8일이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역 승차장에 세워진 시베리아 횡단 열차 기념비에서 단체사진 촬영 후 열차에 탑승했다. 객차마다 담당 승무원이 있어서 탑승 전 개인별 여권 확인을 하고 탑승 후 실내에서 다시 여권 확인을 하는 철저한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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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1실 2층 침대로 구성된 열차 내부는 좁기는 했지만 객차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최근에 배치된 신형 열차였다. 탁자에는 4인용 간식 꾸러미와 물이 놓여있다. 열차가 출발하자 여권을 검사했던 담당 승무원이 문을 두드렸다. 큰 가방을 가져와서 물건을 내미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승무원이 “냠냠”이라고 말해서 도시락이란 걸 알았다. 승무원과 우리 모두는 크게 웃으며 이 상황을 즐겼다.
잠시 후 다시 문을 두드린 승무원은 이번에도 큰 가방에서 각종 기념품과 간식거리를 내밀었다. 이건 개인적인 영업활동이라고 해서 각자 하나씩 구매했다. 그래야 다시 문을 두드리는 일이 없다는 사전정보에 의한 것이다. 하룻밤을 함께할 4명은 보드카와 간식을 안주 삼아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탐방 기간이 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한 내란 사태 중이었고 윤석열이 체포, 구속되기 전이라 탄핵 집회에 함께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참가한 터라 모두 불편했는데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이라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우리를 태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출발해 12시간 40분을 밤새 달려 하바롭스크역에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인 8시 40분(같은 경도이지만 1시간의 시차로 한국 시각 7시 40분)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밤 기온은 출발 시 영하 17도였는데 기차가 하바롭스크에 도착할 무렵에는 열차 복도에 달린 온도계가 영하 28도를 가리켰다. 우리 일행은 모두 엄청난 기온에 놀라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캐리어에서 꺼내 입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눈 속에 덮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영하 28도의 기온이 엄청난 추위로 느껴지진 않았다. 이 도시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러시아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되었다. 하바롭스크에서는 칼 마르크스 거리, 극동인민정부 외교부 청사, 우스펜스키 성당 등을 둘러보았다.
아무르강에 울려 퍼진 아리랑과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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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알렉산드라를 아시나요? 함경도 경원 출신 김두서의 딸로 1885년(고종 22년)에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부해 교사가 되었으나 벌목장에서 통역으로 일하면서 말과 글을 몰라 불평등한 계약에서 일하는 한인들을 위해 불합리한 일들을 앞장서 해결해 주었다.
1917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러시아 공산당의 전신)에 입당했다가 1918년 4월 이동휘, 김립 선생 등이 주도해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주의동맹을 결성할 때 여기에 참여했다.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장으로 임명돼 많은 활동을 했으나 볼셰비키(적파 赤波)로서 백파에 붙잡혀 아무르강가에서 최후를 마치고 시체는 강물에 버려졌다. 이후 하바롭스크시민들이 아무르강에서 고기를 잡아먹지 않았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는 일화는 감동적이었다.
김 알렉산드라의 집무실 건물을 방문한 후 김 알렉산드라 최후의 13보 현장인 아무르 전망대를 방문했다. 꽁꽁 언 눈 덮인 광활한 아무르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망대에는 러시아인들이 몇 명 있었는데 소리꾼 김소영 대원의 ‘아리랑’ 노래에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함께 어울렸다. 아리랑 다음에 누군가의 시작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시작되자 모두가 함께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떼창을 했다. 그 우렁찬 노랫소리가 아무르강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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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민족학교와 아리랑 가무단을 만나다
하바롭스크에서 하루를 탐방하고 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9시간 30분을 달려 우스리스크에 도착했다. 새벽에 도착해 육성촌에 있는 소설가 조명희의 푸칠로프카 농업학교을 방문했다. 조명희 선생이 3년간 근무했던 학교는 관리되지 않아 허물어지기 직전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5년 전 울산에서 뜻있는 동지들이 인수하고자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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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유허비와 발해 솔빈부 성터를 둘러보고 최재형 선생 고택기념관에 도착했다. 6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잘 정비된 전시실과 마당에는 최재형 선생 흉상이 새로 조성돼 있었는데 영하 17도의 기온이라 동상이 추워 보여서 대원들은 모자와 목도리를 둘러주는 것으로 고마움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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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은 1908년 이범윤, 이위종, 안중근 등과 동의회를 조직하고 군자금 1만3000루불을 지원하는 등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서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안중근 참모중장의 하얼빈 의거의 실질적인 후원자로 주목받고 있다.
최재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는 대동공보사에서 하얼빈 의거를 계획한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대동공보는 하얼빈 의거를 신속 정확하게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기념관 관람 후 인근에 있는 전로한족중앙회 결성지를 둘러보고 고려인 민족학교에 초청받아 방문했다. 고려인 민족학교 아리랑 가무단의 특별공연 후 격려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우수리스크 일정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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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로한족중앙회 총회 공간을 보고 싶었지만 현재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데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러시아정교의 크리스마스는 1월 초) 휴가 기간이라서 내부를 볼 순 없었다. 러시아 학교의 겨울방학은 2주이고 여름방학은 3개월이라고 한다. 겨울이 추우니까 방학이 길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현지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추운 계절에는 온방이 잘되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여름에는 가족들과 여행 등을 하라는 취지이다. 방학 기간에는 모든 학원도 휴업이라는데 방학 기간 과외 등으로 힘든 한국의 학생들보다 러시아 학생들의 행복도가 훨씬 높아 보였다.
우수리스크 일정을 마친 우리 대원들은 러시아와 중국 국경도시인 포그라니치니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안중근 참모중장이 하얼빈으로 간 동청철도를 타기 위해 중국국경 도시인 수분하로 넘어갔다.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 격살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 탐방 1편인 ‘안중근과 하얼빈’을 참고하면 좋겠다.
작년 6월 만주벌판을 함께 달렸던 범도 루트 4기 동지들이 의기투합해 광복 80주년의 해에 연해주를 비롯한 항일무장투쟁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자, 이왕이면 칼바람 부는 겨울에 선배 투사들의 고충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결의에 의해 결성된 범도 루트 10기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 투표만 잘해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선배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기는 시간이었다.
배성만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행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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