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정기 검사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금감원은 당초 지난해 12월 검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발표 시기를 올해 1월로 연기했다가 최근 2월로 다시 연기했다. 국정 상황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금감원 기조에 변화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 검사에 착수했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은 지난해 금감원 정기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그룹이 구설수에 오르자 정기 검사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에서는 지난해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둘러싸고 부당 대출 논란까지 불거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검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12월이 되자 돌연 “현 경제 상황 및 금융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리은행 등 금융권의 주요 검사 결과 발표는 내년(2025년) 초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월 8일에는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의 검사 결과는 국회의 내란 국정조사, 정부 업무보고 일정, 임시공휴일 지정 등으로 발표 시점이 2월 초로 조정됐다”고 전했다.
금감원 발표가 연기되면서 우리금융지주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8월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금융당국의 인허가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지주사가 금융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금감원 경영실태평가에서 2단계 이상을 받아야 한다. 금감원은 정기 검사 후 이를 반영해 경영실태평가 점수를 부여한다. 우리금융지주가 최근 여러 구설수에 휘말린 만큼 3단계로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가 무산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 입장에서는 결과가 어떻건 검사 결과가 빨리 나와야 후속 대책을 준비할 수 있다”며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2단계로 유지되더라도 인수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2023년 3월 취임 후 줄곧 ‘비은행 강화’를 강조했다.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는 비은행 강화를 위한 핵심 작업이다. 따라서 인수가 무산되면 임 회장의 비은행 강화 로드맵에 차질이 발생한다. 임종룡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로드맵을 원점에서 검토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금융지주는 금감원 검사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뜻하지 않은 변수가 등장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감원의 힘이 빠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릴 만큼 측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되면서 이 원장의 위세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변화가 발생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부서장 75명 중 74명을 재배치했다. 금감원은 앞서 2023년 말에도 부서장 81명 중 68명을 교체했다. 이복현 원장의 흔들리는 입지와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당분간 업무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담당 업무를 맡은 팀장을 국장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연속성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12월 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쪽지 지시 사항을 논의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1월 8일 “(F4 회의에서) 비상계엄 관련 쪽지 내용을 논의했다는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금감원이 혼란에 빠지면 상황은 우리금융지주에 유리해진다. 우리금융지주 검사에 역량을 집중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금융지주의 최근 분위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손태승 전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금융권 내부에서도 이복현 원장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흘러나온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지난해 8월 성명을 통해 “이복현 원장은 임기 초부터 금융감독 본연의 업무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금융권을 길들이는 데 집중해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심지어 우리금융지주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검사 발표를 연기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금감원이 일정까지 앞당겨 검사를 진행했는데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무리한 검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금감원은 이러한 의혹을 부정한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12월 우리금융지주 검사 발표 연기와 관련해 “원칙대로 매운 맛을 시장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미뤘다”며 “검사 과정에서 밝혀낸 위법행위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거나 경미하게 취급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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