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당부 25년, ‘불난 집’ 한국 배터리

2025-08-28

25년 전, 배터리 사업에 착수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장 돈 못 벌어도 좋다. 불나지 않는 배터리를 만들어라.”

지금 한국 배터리 산업은 ‘불난 집’이다. 세계 1위였던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이제 15%대로 추락했다. 연쇄 화재 문제까지 겹쳤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피어난 신성장 동력이 흔들린다.

1999년부터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C 배터리 사업부(현 SK온)가 잇달아 소형 원통형 배터리 생산 체제를 갖추며 산업을 일궜다. 삼성SDI는 소형전지 세계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중대형 전지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중국은 압도적인 생산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격차를 벌린 요인은 네 가지다.

첫째, 전략이 약진과 정체를 갈랐다. 중국은 철 기반의 리튬인산철(LFP)과 소듐이온 이차전지로 정면 돌파에 나섰고, 한국이 강점을 지닌 니켈 기반 삼원계마저 잠식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전고체 전지에 매달리다 시간을 허비했고, 뒤늦게 철 기반 이차전지 개발에 나섰지만,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둘째, 리더십이다. 중국에는 CATL의 쩡위친, CALB의 류징위 같은 강력한 산업 리더가 있었고 정부는 ‘제조업 강국 2025’ 전략으로 전폭적 지원을 이어갔다.

셋째, 학문적 기반도 뒤처졌다. 중국은 일본처럼 ‘전기화학’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CATL은 마케팅보다 연구를 우선했고, 기술 이해와 응용에서 앞섰다. 반면 한국은 전시성 연구와 홍보에 치중하다 기술 이해와 응용에서 뒤처졌다. 넷째, 보안 실패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삼원계 양극재 전구체, 배터리 핵심 장비와 공정 기술이 사설 조사·컨설팅 업체를 통해 해외로 유출되면서 한국의 최대 강점이던 삼원계 전지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새 정부 출범 후 배터리는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났다. 국정기획위원회의 123대 국정과제에서 배터리는 ‘재생에너지 전력망’에 묻혀 존재감이 희미하다. 불과 몇 년 전 ‘첨단 전략산업’으로 집중 조명을 받던 시절과는 극명한 대조다.

어떻게 역전할 것인가. 한·중 격차가 역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의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업계 스스로 해답을 구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전략적 제휴, 전기화학 본질로 돌아가는 연구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 유출을 막겠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다시 불사조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이건희 회장의 당부처럼, 이번에는 정말로 ‘불나지 않는’ 견고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