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공급구조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중앙집중형 구조가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공급지와 수요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전력 자립도가 낮으면서도 전력 소비력이 훨씬 높은 지역이 우리의 수도권 중심이라는 점, 전기의 이동 거리로 인해 전력량 손실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환경 훼손 등의 문제 또한 계속 제기되고 있는 점들은 결국 에너지의 탈중앙화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 분권의 시대를 낳게 했다.

석탄, 원전 등 기저 발전이 주도하는 중앙집중형에서, 소규모로 구축할 수 있으면서도 부지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간격을 대폭 줄일 수 있도록 분산형으로 바뀌어 가는 현시점에서, 분산 에너지법은 에너지 분야의 최대 이슈가 됐다.
분산 에너지는 그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지역에서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 단위의 에너지 시스템이다. 이러한 분산 전원을, 전기사업법에서는 ‘전력 수요 지역 인근에 설치해 송전선로의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하의 발전 설비’로 정의하고 있다. 즉, 소비자의 근처에서 전기를 만들고, 보내고, 사용하고, 저장하는 이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분산 전원이라 할 수 있다.
분산 전원은 주로 풍력, 태양광, 연료전지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며, 중앙 시스템이나 설비에 문제가 생겨도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전기에 대한 제어가 제한적인 중앙집중식과 달리,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전기 제어에 관여하는 ‘양방향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큰 특징을 갖고 있다.
수요지 인근에서 중·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분산 발전은 송배전 범위가 작아 해당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을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력 계통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 또한 있다. 또한 기저 발전처럼 건강 악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오염물질을 발생시키지도 않고, 중앙집중형 에너지 공급이 야기하는 불평등과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전환은 또한 온실가스 다배출 에너지원을 청정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공급원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에너지 분권이 곧 에너지전환을 달성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분산에너지원의 기술이 점점 발달해 가면서 그 비중은 훨씬 커지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 프로슈머’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소비자(cons umer)’가 ‘생산자(producer)’ 역할도 하는 ‘프로슈머(prosumer)’ 개념을 제시했는데, ‘에너지 프로슈머’는 자신이 직접 태양, 바람 등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또 시장에서 판매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즉,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면서 동시에 소비하는 주체를 말한다.
영국은 웹 기반 전력 거래플랫폼을 통해 잉여전력을 온라인으로 거래하고, 네델란드는 에너지 거래플랫폼을 통해 고객이 전력 생산자가 제시한 가격을 고려해 생산자를 선택한 후 약정을 맺어 전기를 거래한다. 독일은 이웃 간 거래플랫폼을 이용해 태양광 발전 설비 소유자들을 연결하고 잉여전력을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재생 발전 설비를 통해 생산한 전기를 자가 소비한 후 잉여전력을 전력회사로 전송하고 해당 잉여량을 전기요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인 상계 거래, 프로슈머들이 생산한 전력을 중개사업자가 모집해 전력시장에 도매로 판매하는 방식인 중개 시장 판매, 개인 간 전력을 공유하는 시스템 안에서 프로슈머가 생산한 전력을 이웃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는 방식인 P2P 거래 등이 있다.
수원 솔대마을에서는 지붕 태양광을 활용해 사용 후 남는 전력을 이웃에 판매하고 있고, 서울 동작구 상현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옥상에 대규모 태양광을 설치해 동일 배전망 내 높은 누진제 요금을 적용받는 아파트에 전력을 판매한다. 서울과 광주의 ‘SG 체험단지’에서는 재생에너지 자원보유자로부터 전기사용자가 필요전력량을 입찰 구매하는 신재생에너지 공유 공동체 전력 서비스 실증을 했다.
전기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 공급을 초과해 전기를 생산해서도 안 되고, 수요가 초과돼 전기가 부족해도 안 된다.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적인 생산과 저장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ESS와 스마트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의 발달로 저장이 용이해지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등의 거래에 관한 지침’을 개정 고시함으로써 일정한 지역 안에서 이웃 간 거래를 허용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섬, 대학, 산업단지 등에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하는 사업, 아파트와 상가 등에 제로 에너지 빌딩을 만드는 사업, 마을 단위의 친환경 에너지 타운을 조성하는 주민 참여형 사업 등을 통해 에너지 프로슈머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는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자립화를 이끌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먼 곳에 있지 않다. 앞으로 우리 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에너지 프로슈머의 길, 함께 만들어 가보길 기대한다.
배병준 프렌츠에너지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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