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부른 경제위기, 환율·수출 문제 더 비중있게 다뤄야

2024-12-30

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57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회의가 지난 24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관련 기사에 대한 의견이 대거 제시됐다. 위원들은 “중앙일보의 관련 보도는 전반적으로 중심을 잘 잡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쉬운 대목을 꼼꼼히 지적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비상계엄 관련 기사가 많은 달이었다. 이슈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전반적으로 체계적인 전달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23, 24일자에 실린 ‘계엄, 그날의 재구성’ 1·2편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잘 정리해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줬다. 또 23일부터 시작된 ‘포스트87 길을 묻다’ 시리즈는 혼란스러운 정국에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는 좋은 시도다. 12일자 8면 “정보사 ○○○ 알아요” 기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국회 등에 계엄군이 투입된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군 기밀이 노출되는 문제를 적절히 지적했다. 19일자 4면 부정선거론자의 주장을 팩트체크한 건 4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잘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계엄 선포와 해제 직후인 4일자 사설에서도 계엄의 부당성을 지적해 발 빨랐다.

2일자 1·8면 ‘뉴 헬리콥터 부모’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현상을 잘 풀어낸 기사다. 다만 과거부터 있던 현상인데 왜 이 시점에 다루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선명하지 않다. 현상의 원인도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면 더욱 좋았겠다.

3일자 2면 ‘AI 디지털 교과서’ 기사는 도입 찬성 쪽 입장에 치우친 감이 있고 문제점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담지 않아 아쉬웠다. AI 교과서 관련 다른 나라의 상황을 전하는 기사도 기대한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계엄을 둘러싸고 의미 있는 단독 보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5일자 1면 김용현 국방장관 관련 기사, 같은 날 ‘“계엄 안된다” 국무회의 멤버 아닌 국정원장도 말렸다’, ‘“확 계엄해 버릴까” 윤 대통령, 평소에도 종종 얘기했다’ 등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반면 이번 사태가 초래할 외교·국제적 파장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면이 있다.

계엄·탄핵 사태 관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기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 인터뷰를 넘어 다양한 쟁점별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는 시리즈를 제안한다. 현 시국과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상황과의 법적·정치적 유사점과 차이점, 관련 시위대의 인구학적인 차이점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기사도 다뤄볼 만하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중앙일보는 계엄·탄핵 정국에서 사설을 통해서도 상식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정론지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20일자 30면에 실린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의 기고가 울림이 있었다. 글은 2020년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몰려들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군대 출동’을 명령했지만, 마크 밀리 전 미 합참의장이 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일을 전한다. 계엄 선포 당시 군인과 공무원들이 어떻게 해야 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16일자 8면 ‘안보 리스크, 8년 전보다 커졌다’에서 ‘군 지휘부 공백 상태’란 표현과 ‘북 도발 무방비’란 부제는 부적절했다. 대행 체제이긴 하나 지휘부가 있는 만큼 공백이라고 하기 어렵고, 우리 국방 태세를 과소평가하면 국민의 불안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일자 경제 5면 기사는 ‘소득 100만원 넘는 어머니, 연말정산 포함 안 됩니다’란 제목만 봤을 때 어머니는 당연히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란 편향된 인식이 드러난 면이 있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현 정치 상황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11일자 10면 경제수장 6인의 진단과 제언 기사가 좋았다. 12일자 경제면에 ‘탄핵 정국에 멈춘 K과학기술’ 기사도 시의적절했다. 이전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과는 환율 변동과 경기 침체 정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하는 기사도 제안한다.

반면 20일자 14면 ‘2024 한국의 사회 동향’ 보고서를 다룬 기사는 AI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의 수가 한국이 세계 평균보다 높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 아쉽다. 통계 인용 기사를 쓸 때 “왜?”라는 의문에 답하지 않고 숫자만 나오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이달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기념 강연, 내외신 기자 간담회 등 관련 보도를 잘했다. 특히 11일자 2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 인터뷰가 좋았는데, “어떤 이념적 고려도 없이 문학성만으로 한강을 수상자로 선택했다”는 심사위원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계엄 관련 중앙일보의 보도가 적절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경제 위기 상황을 비중 있게 짚어보는 기사가 좀 적었다고 생각한다. 20일자 1면 ‘1달러=1451원’, 23일자 1면 ‘한국 수출 엔진마저 식는다’ 기사 이외엔 인상적인 기사가 별로 없었다. 이런 기사가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2주 넘게 지나 나온 것도 늦은 감이 있다. 세계 경제 악화와 계엄·탄핵 사태란 대내외 위기 상황인데 경제 문제 관련 보도가 분야 별로 더 촘촘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7일자 20면엔 광장시장 화장실 리모델링 기사가 자세히 실렸다. 하나의 사례를 넘어 한국 화장실이 해외 사례와 비교해 얼마나 세계 최고 수준인지,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 기획 기사도 기대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2일자 1·8면 ‘뉴 헬리콥터 부모’는 현상을 잘 취재해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기사에서 부모의 과한 개입 사례 중 하나로 의대생과 전공의 부모들의 시위를 들었는데 이는 의정 갈등과 관련된 만큼 기사 주제와 좀 맞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대졸 신입사원 첫 입사 평균 연령으로 4년이나 지난 2020년 통계를 인용한 점이 아쉬웠다.

3일자 8면에 ‘헬리콥터 조부모’에 대해서도 다뤄 기획기사의 완결성 면에서도 좋았다. 하지만 기사는 손주에 대한 조부모의 금전적 지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지원 중 하나인 ‘돌봄 양육’은 언급하지 않아 아쉬웠다. 또 고령화 시대와 맞벌이가 많은 사회 현실 속에서 조부모의 돌봄과 양육이 가진 긍정적이고 불가피한 면도 함께 짚어줬으면 좋았겠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중앙일보의 보도가 전반적으로 잘됐다. 다만 중앙일보뿐 아니라 많은 언론이 한강 작가의 이브닝드레스와 같은 외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온라인 기사를 낸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3일자 1면 ‘유튜브 지라시, 기업 흔든다’ 기사는 지라시가 기업까지 흔드는 현상을 짚었다. 지라시의 문제점, 유튜브가 지라시의 전파 속도를 더 빠르게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기사에서 언급한 특정 기업의 주가가 내린 건 정말 지라시만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 들었다. 3일자 2면 ‘AI 디지털 교과서’ 기사가 인상 깊었다. 이 교과서를 잘 만드는 것만큼 교과서를 활용할 교사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한데, 이런 부분을 다룬 기사도 기대한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계엄·탄핵 사태 관련 중앙일보가 방향과 중심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19일자 부정선거론자의 주장 팩트체크 기사가 시의적절했다. ‘부정 선거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이유로 꼽았던 것 중 하나다.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많은 언론이 분석 기사를 내지 않은 반면 중앙일보는 비중 있게 다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의 언론 보도 행태에서 교훈을 얻으면 좋겠다. 당시 지엽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돌이켜보면 본질이 아니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를 바꿔야 할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기대한다. 큰 그림을 그리며 접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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