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의 대통령선거

2025-06-01

21대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전투표는 이미 진행되었고 본 투표만 남겨 놓고 있다. 이제 곧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이주민으로서 한국 시민이 된 이후 여러 번의 선거를 겪었지만 나에게 이번 선거만큼 큰 의미로 다가왔던 선거는 없었다. 모두가 가슴 졸였던 작년 12월 3일의 계엄과 그 이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라는 것이 정말로 약하면서도 강한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혐오 감정, 선거로 번질까 걱정

이주민 공약도 겉핥기식 말뿐

포용사회 된다는 희망 주어야

대통령과 소수의 권력자가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물어보지도 않고 헌법과 법률을 어기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고, 작은 차이로 이 시도가 실패했지만 하마터면 그동안 한국 국민이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무너질 뻔한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히 무장군인들을 막아선 시민들의 용기, 최소한의 자제력을 잃지 않은 젊은 군인들과 빠른 시간 안에 국회에 모여 계엄해제 결의를 한 국회의원들, 헌법을 기준으로 거의 모든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헌법재판소 등 정말 많은 사람 덕분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다시 희망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은 이주민들도 출신 국가는 달라도 현재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상황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이곳이 보다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주민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에 대해 몇 가지 걱정이 있다. 먼저 선거 과정에서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통합해나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일부 정치인과 그 세력들이 사람들 사이에 혐오와 차별을 퍼뜨려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고, 이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세대를 가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것은 이주민이라는 또 다른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안 그래도  이주민과 다문화사회에 대한 한국사회의 감수성이 점점 흐려지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언젠가 이주민도 이 사회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겠냐는 걱정이 든다. 혐오가 만연된 사회에서 이주민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벌써 어떤 후보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제를 차등 적용하겠다는 차별적이고 헌법에 어긋나는 공약을 버젓이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또 우려하는 점은 이번 선거에서 이주민 문제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력한 두 정당의 후보들의 공약에서는 이주민과 다문화 사회에 대한 공약이나 비전을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부분적으로 발표하는 정책과제들을 봐도 양당 모두 구체성이 떨어지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겉핥기식의 말뿐이다. 오히려 지난 대선의 공약보다 한참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치르게 된 대통령선거라는 점, 그 때문에 다른 선거에 비해 준비 기간이 짧고 깊이 있는 공약을 준비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의 비율이 높아지고 사회적 역할이 커지는데 정권을 획득하여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들이 평소에 이주민 문제와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괜히 이주민과 다문화 사회와 같은 갈등이 우려되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주민과 관련된 과제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해도 이번 선거는 이주민들에게도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갈등이 조장되고 심화되어 소수자들이 언제 차별받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느냐, 아니면 헌법적 가치와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이주민도 차별받지 않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공약도 중요하지만 이번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어느 쪽이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따듯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이다. 그래야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은 급한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누구에게 권력을 줄 것인지는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고 선택이다. 국민 각자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서로 비난하거나 갈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각자의 선택이 모여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나 또한 이주민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주권을 부끄럽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사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차별이 당연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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