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하자, 더는 못하겠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60년 즈음 서울 어딘가의 아파트가 배경이다.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쓸모가 다한 ‘헬퍼봇’의 거주지다. 충전기가 고장나자 난처해진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기 위해 ‘올리버’ 집의 문을 두드리며 공연은 시작한다.
처음에 성격이 달라 삐걱거린 둘은 충전기를 주고 받으며 거리를 좁혔다. 서로 목적은 다르지만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낯선 느낌에 “우린 자율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게 프로그래밍돼 있다”며 둘 모두 애써 부인하지만, 결국 사랑이란 걸 깨닫는다. 하지만 헬퍼봇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삶은 없다. 끝이 보이는 결말 속에 헬퍼봇들은 처음 경험하는 사랑과 이별로 감정의 고통을 겪는다.
‘어쩌면 해피엔딩’ 10주년 기념공연이 지난달 30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막을 올렸다.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시범 공연)을 시작으로 2016년 초연에서 지난해 5연까지, 이 작품은 무대에 설 때마다 ‘헬 티케팅(지옥같은 표 구하기 전쟁)’을 유발하는 작품이었다. 토니상 6관왕을 수상한 뒤 다시 한국을 찾은 이번 작품은 예상대로 전석 매진이다. 티켓이 오픈 된 다음 달 7일까지의 공연 표는 모두 팔렸다.
여느 연인과 다를 바 없이 사소한 일에 아웅다웅 거리는 커플 연기에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들은 폭소로 답했다. 그러다 사랑의 끝을 예감하고 나름의 ‘해피엔딩’을 맺으려는 이들의 모습에 객석에선 연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0주년 공연의 큰 줄거리는 토니상을 수상한 미국 프로덕션과 유사하다. 다만 공연 언어와 무대 규모에 일부 차이가 있다. 예컨대 미국 공연에선 4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데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과 마찬가지로 3명으로 돌아왔다.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 그리고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 다. 미국 공연에는 한국 작품 대비 제임스의 서사가 더 담겨있다.

미국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넘버다. 미국 공연에서 삭제된 세 곡의 넘버를 한국 공연에서 들을 수 있다. ‘퍼스트 타임 인 러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등이다. 모두 ‘올리버’와 ‘클레어’가 함께 부르는 넘버로 극 후반에 배치됐다. 이 작품 음악을 만든 윌 애런슨은 “미국 작품 버전에서는 이야기 압축을 위해 한국 공연에 있던 세 곡을 다른 두 곡으로 대체했다”며 “한국 공연에서 그 세 곡을 다시 들을 수 있어 기쁘다”라고 밝혔다.
기존 한국 공연에 비해선 무대가 다소 커졌다. 그간 객석수 300석 가량의 극장 무대에 섰는데, 이번 작품은 550석 규모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극장 뮤지컬 작품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멀지 않은 미래가 배경이지만 LP 플레이어, 종이컵 전화기 등을 통한 아날로그적 정서의 매력도 여전하다.
이번 공연은 10주년을 기념하는 만큼 그간의 여정을 함께한 여러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2016년 초연에 출연한 김재범과 전미도, 최수진이 특별출연한다. 2018년에 참가했던 전성우, 박지연과 2021년에 출연한 신성민도 캐스팅됐다.
지난해 프로덕션에 참가한 박진주와 이시안 역시 10주년 공연에 나온다. 정휘, 방민아, 박세훈은 이번 10주년 공연을 통해 처음 이 작품에 합류했다. 이번 공연은 내년 1월 25일 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