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부고’다.
애도를 담든 안 담든 누군가의 ‘죽음’이 담긴 전화를 받는 게 나의 일이다.
그게 일이지만 벨소리에 어떠한 기대감도 없다.
다만 아직도 움찔할 따름이다.
가끔은 ‘단골(?) 고객’의 전화를 받는다.
원룸의 건물주라든가, 고독사 관련 단체다.
처음 일을 맡을 때 여러 번 통화를 해야 하니 저장해 놓은 번호로 몇 년 뒤 다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다.
이럴 때 전화 응대가 난감하다.
반갑습니다?
‘그게 반가울 일이겠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면 내게 또 전화를 걸겠나.’
예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늘 그런 묘한 느낌이다.
이번에도 같은 번호였다.
“대표님, 예전에 무료청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에요.
혹시 이번에도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집에서 또 세입자가 고독사로 죽어나갔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 받았어요.
딱해서 지하주차장 쪽을 좀 고쳐서 쓰라고 내줬거든요….”
“좋은 일을 하셨는데 안타깝게 됐네요.”
무료 특수청소를 해드릴 때가 있다.
내 유튜브에 그런 현장에 대한 영상을 올리다 보면 까칠한 댓글들도 달린다.
‘건물주면 돈도 많을 텐데 왜 무료로 지원을 해주는 거죠?’
일일이 설명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보니 가끔 속이 답답하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고독사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여럿인 사고 현장’
…이라는 것이다.
세를 내준 집주인도,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고인도,
그 누구하나 가해자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어쨌든 특수청소는 필요하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든다.
유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시신을 건물주라고 해서 감당해야 할까.
월세를 떼여 보증금도 얼마 안 남은 경우도 많다.
아니 재산유무를 떠나 집주인도 똑같이 피해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