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빠 좋아…2억 잃은 피해자들, 캄보디아 ‘로맨스스캠’에 와르르

2025-10-15

“매일 아침 ‘오빠 좋은 하루 보내’라며 메시지를 보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제 통장 속 2억1180만원이 사라졌습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50대 피해자 김모 씨의 목소리는 깊게 잠겨 있었다. 그가 믿었던 여자친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MBTI(성격유형지표)부터 가족, 직업까지 완벽히 꾸며진 ‘가짜 인물’이었다. 사기를 당한 뒤 김 씨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호텔 요리사로 일하던 그는 8차례나 직장을 옮겼다. 현재는 화물차를 몬다. 8개월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일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한때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 그는 “범인이 잡혔다고 해서 이제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9개월째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라며 허탈함을 내비쳤다.

김씨를 비롯한 피해자 100여명은 여전히 법정조차 밟지 못하고 있다. 120억원대 ‘로맨스스캠’ 사기를 벌인 주범 강모(31)·안모(29)씨 부부의 캄보디아 송환이 9개월째 멈춰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 각 정당에까지 수 차례 탄원서를 보내며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진전은 없다. 사기를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있었다.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피해자도 있다. 김씨는 “캄보디아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생각만해도 하늘이 무너집니다”라며 고통을 토로했다.

청각·언어장애 1급인 40대 피해자 최모씨 역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동안 사람을 피했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온라인 연인과 함께 미래를 꿈꾸며 “나이 들면 전원주택을 짓고 살자”는 이야기까지 나눴다. 그러나 이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씨는 500만원을 잃었고, 사기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계속 돈을 빼내려는 그녀의 말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로맨스스캠 총책 강씨 부부는 현지 관계자에게 6000만원을 건네고 풀려난 뒤, 쌍꺼풀·코 수술까지 받고 다시 체포됐지만 현재 또다시 석방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현지 사법 절차가 불투명하고 행정이 비정상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며 “법무부·외교부와 협조하고 있으나 송환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캄보디아 반정부 인사와의 교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강씨 부부는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뒤 현지 한국대사관까지 찾았다고 한다. 또 다른 피해자인 50대 이모씨는 “무효화된 여권을 재발급 받기 위해서 왔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못 잡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했다.

송환이 늦어질수록 피해금 환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강씨 부부는 지난해 3월부터 주부·노인·장애인 등 100여명을 상대로 가짜 투자 연인 사기를 벌였다. 10일치 분량의 대본까지 준비했고, 코인과 주식 투자를 유도해 돈을 가로챘다. 피해금액은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8억80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범죄로 벌어들인 돈은 가상화폐, 상품권 거래 등 자금세탁 조직을 통해 현금화 해 사용했다.

경찰은 주범인 이들 부부 외에 공범 36명을 붙잡아 구속 송치했다. 이 중 7명은 지난 7월 범죄단체 가입 및 사기 혐의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최근 경찰은 국내 송환이 더 늦어질 것으로 보고, 강씨 부부를 대상으로 범죄수익 자금 처분을 차단하는 인터폴 은색수배(Blue Notice)를 추가 발령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 강씨 부부의 송환이 늦어지면서 사건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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