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일간 캄보디아에 갇혀있었던 40대 남성 허민중(가명)씨의 증언이다.
허씨는 지난 7월 2일 관광 목적으로 혼자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향했다. 한국인 지인을 통해 카지노에 들른 뒤 지인이 아는 중국인들을 소개받아 두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불지옥 같은 61일’의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지인이 자리를 비우고, 처음 보는 중국인들이 자리를 채우더니 문을 잠그고 허씨를 둘러싼 채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라. 5000~1만 달러를 주면 풀어주겠다”고 했다. 연락에 필요한 휴대전화는 빼앗지 않았다. 허씨는 감시가 허술한 틈에 기지를 발휘해 대사관 텔레그램 아이디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 온 답은 “7~8가지 양식을 다 채워 보내고, 감금 현장 사진도 보내라”는 것이었다. 허씨는 “감금 상태에서 하긴 거의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다”고 했다. 이후 겨우 틈을 봐 상황을 전달했다. 그리고 안심했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대사관은 “이틀 걸릴지 사흘 걸릴지 모른다”고만 답했다. 그는 “갇혀 있던 곳은 얼핏 별 다를게 없는 건물이었고 1~2층은 카지노, 그 위엔 술집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5층부터 20층까지 보이스피싱 사무실로 운영되는 거대한 범죄 단지였다”고 했다.

감금된 허씨는 이후 2박3일동안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했다. 딱딱한 돌로 만든 타일 바닥에서 ‘원산 폭격(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머리를 바닥에 박는 자세)’에 가까운 고통스러운 자세를 취하게 했고 자세가 흐트러지면 곧장 술병과 재떨이가 날아왔다.
그렇게 감금·폭행 상태로 버틴 3일째, 일당들이 바삐 전화를 돌렸고, 곧 ‘고슴도치(텔레그램 아이디)’가 찾아왔다. 고슴도치는 텔레그램에서 보이스피싱 통장 장사를 하는 조선족이었다. 일당은 그에게 허씨를 팔아 넘겼다. 인신매매였다. 허씨를 산 고슴도치는 “사기 조직으로 넘어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며 허씨를 안심시켰다.
“경찰도 한통속”
절망감이 커져가던 7월 8일, 입국 6일째 되던 그날 갑자기 현지 경찰이 허씨가 갇힌 건물에 들이닥쳤다. 그런데 가해자들을 앞에 두고 엉뚱하게 허씨를 찾았다. 신고 사실을 들킬까 입을 닫아야 했고,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 가릴 것 없이 경찰서로 연행했다. 이후 사흘간 흙바닥에 지푸라기 깔려 있고 쇠창살로 비가 다 들이치는 조악한 유치장에 갇혔다. “도마뱀과 바퀴벌레가 가득했다. 험악한 애들이 들어와 발로 차면 자리를 뺏기고 (구석으로) 쫓겨났다. 피해자니 금방 풀려날거라 기대했지만, 더는 경찰을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머리가 겨우 통과되는 쇠창살 틈을 찾아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자유는 단 2시간. 다시 붙잡혀 이번엔 경찰서 내 감옥 같은 공간으로 옮겨졌다. 감금 피해자에서 도망자가 된 것이다.
감옥은 ‘불지옥’이었다. 가로 4m, 세로 5m 크기의 방에 최대 35명 가량을 집어 넣었다. 무더위에 땀이 물처럼 쏟아졌고 바닥에 더러운 땟국물이 흘렀다. 모두 웃통을 벗어던졌다. 눕기만 하면 수감자들의 살갗이 찐득하게 달라 붙었다. 하루 두 번, 흙탕물을 페트병에 받았고, 한통을 몸에 뿌리며 샤워를 했다. 허씨는 “지옥불에 떨어진 것 같았다”고 했다. 식사는 단 두끼, 밥 한그릇에 흐물흐물한 계란 반개 정도를 풀어 만든 반찬과 함께 제공됐다.
뇌물이 통하는 세계

이곳에서 5주쯤 버텼다. 감옥에서 만난 다른 범죄자들에게 허씨를 감금한 일당 얘기를 전해들었다. 3명의 가해자는 잡히자마자 경찰서장에 10만 달러를 건넸고, 에어컨과 침대가 있는 ‘감옥 속 호텔’ 같은 방에 머물다 금방 풀려났다고 했다. 사람 3명을 죽인 살인자도 경찰에 2만 달러 건네 4일 만에 풀려났다는 얘기도 들었다. 허씨는 “돈만 있으면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놀다 가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민국 대기 3주 후 극적 구조
8월 11일, 허씨는 이민국으로 옮겨졌다. 이민국의 수용 시설도 1인당 공간만 조금 더 넓은 감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경찰서, 이민국 모두 보호한다는 차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감금이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현지 경찰은 ”100만원을 주면 휴대전화를 주겠다”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대사관 직원은 이때까지도 만나지 못했다.
이후 허씨는 이민국에서 3주간 머물렀다. 그리고 운좋게도, 같은 달 31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운이 아주 좋은 사례”라고 했다. 마침 박 의원실에서 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구출을 시도하던 시기에 있어서 함께 귀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씨는 “이민국에선 45~60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며 “피해자조차도 범죄자들과 함께 잡아넣어 가뒀고, 대사관은 열악한 환경을 알면서도 우릴 방치했다. 지옥 같은 61일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