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반(反)부패의 상징적 인물인 장성민(張升民·67) 상장이 23일 신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됐다. 이날 폐막과 함께 발표된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 자료에 따르면 허웨이둥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의 당·군적 박탈을 확정하고 장 부주석의 임명을 결정했다.
장 부주석의 고향은 산시(陝西)성 우궁(武功)현 출신으로 푸핑(富平)현인 시진핑(習近平·72) 군사위 주석, 웨이난(渭南)인 장유샤(張又俠·75) 군사위 제1부주석과 동향이다. 2017년 1월부터 8년 9개월 동안 군 기율위원회 서기를 맡아 98년 인민해방군 역사상 최장기 재직 기록을 세웠다. 또 시 주석이 집권한 18차 당 대회 이후 군부에서 하나의 직책을 맡은 최장기 기록도 보유했다.
장 부주석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시진핑 집권 후 진행된 군내 반부패 숙청으로 사라진 궈보슝(郭伯雄·83)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 1943~2015), 웨이펑허(魏鳳和·71) 전 국방부장과 군생활이 여러차례 겹쳤다. 상관의 낙마는 장의 승진 가도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3년 장성민은 당시 란저우(蘭州) 군구에서 현 정치공작부의 전신인 총정치부의 판공청 연구실에 배속됐다. 이후 1999년 쉬차이허우가 총정치부 상무부주임을 맡자 장성민도 총정치부 연구실 부주임으로 승진해 그의 연설문 작성을 전담했다. 당시 쉬차이허우는 군 기율위 서기도 겸임했다. 장성민의 상관이자 선임자였던 셈이다.

2004년 46세의 장성민은 소장으로 승진하며 제2포병(현 로켓군) 55기지 정치부 주임으로 영전했다. 이후 11년간 로켓군에 근무하며 로켓군 사령관, 이후 국방부장에 오른 웨이펑허의 부하가 됐다.
시 주석 1기이던 2014년 쉬차이허우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쉬차이허우의 많은 옛 부하들이 낙마했지만 장성민은 반대로 고속 승진이 시작됐다. 제2포병 정치공작부 주임 11개월, 훈련관리부 정치위원 8개월, 후근보장부 정치위원 7개월을 지낸 뒤 군 기율위 서기로 올라섰다.
다시 9개월만인 2017년 19월 ‘꽃 중의 꽃’으로 불리는 중앙군사위 위원에 입성했다. 당시 장성민의 부상을 둘러싸고 두 가지 해석이 나왔다. 한 사람이 부귀해지면 모두 따라 부귀해진다는 일영구영(一榮俱榮)이 하나다. 시 주석, 장 부주석과 함께 산시파의 부상이라는 해석이다. 동시에 창끝을 돌려 아군를 공격했다는 반과일격(反戈一擊)이란 말도 나왔다. 쉬차이허우 조사를 도왔을 수 있다는 풀이다. 이후 8년이 또 흘러 장 부주석은 리상푸·먀오화·허웨이둥의 연쇄 낙마를 거치며 결국 군 2인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