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자는 천하에 바른 도리가 통할 때는 덕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끌지만 도리가 무너진 세상에서는 힘이 센 사람이 약자들을 제멋대로 부린다고 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보편적 가치가 약화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시대에 약소국은 강대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21세기도 중반을 향해가는 시점에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를 외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부 셧다운의 장기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치안 유지에 군대를 동원하고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며 대학의 자율권을 훼손하는 것은 개별 사안의 옳고 그름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일구어온 민주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말살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두고 1776년에 사라진 왕이 다시 나타났다며 도널드 1세라고 지목하는 것도 납득이 간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채로 파탄날 지경인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낳은, 비정상적인 극약 처방으로 보일 뿐이다.
최소한의 명분조차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그 행보의 와중에 500조원의 대미 투자 펀드 문제를 떠안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힘이 약하면서 자존심만 내세워 시비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 관세를 볼모로 삼은 이 무도하고 일방적인 처사를 두고 ‘매우 공정한 무역협정’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며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이 엄혹한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정파별 이해관계를 떠나서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창랑 물 맑으면 내 갓끈 씻고, 창랑 물 흐리면 내 발을 씻네.” 물의 입장에서 볼 때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나 자신이 초래한 결과라는 뜻을 담은 오래된 노래다. 맹자는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은 스스로 망친 뒤에 남이 망치며, 나라는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고 말하고 서경을 인용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현실 앞에서 다시 떠오르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