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이론의 세계적 실패 앞에서

2025-11-27

오늘의 세계 현실이 보편을 상실하여 혼돈에 빠져든 문제(10월 31일자 중앙시평 ‘혼돈의 세계, 세계의 혼돈’)보다 더 심각한 혼돈과 실패가 존재한다. 세계 현실에 대한 인류의 학문과 이론의 실패를 말한다. 실패도 이토록 철저한 실패가 없다.

한 세대 전의 탈냉전·세계화에서 오늘의 탈세계화로 전변하는 동안 세계의 학문 담론은 아무런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세계화 전후 세계를 설명하던 작은 이론들-역사종언론, 문명충돌론, 유일제국론, 세계내전론, 투키디데스 함정론, 신냉전론, 신천하체제, 유교부활론, 서구소멸론-의 현실 설명력 상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오류에 대해서는 객관적 세계 현실을 근거로 언제든 상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중심 이론들 철저한 실패

근대화론의 민주주의 설명력 붕괴

중국은 공산주의 이론 실패 교범

보편 문명 향한 학문과 이론 절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이론들의 실패보다 더 거대한 실패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대립하는 두 거대 이론, 즉 자유주의·근대화론과 급진주의·사회주의 교의의 실패다. 흥미 있게도 두 거대 이론의 실패는 그 중심지에서 현실로 반증되고 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근대화론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부유해지면 교육의 발전, 중산층의 성장, 체제 내구력의 증대와 함께 한 공동체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안정성과 지속성을 갖게 된다. 특히 민주주의가 그렇다. 이 주장은 부분적 도전과 흠결에도 불구하고 근본 명제와 세계 현실에서는 오래도록 중심 총아였다. 심지어 몇몇 이론은 국민 소득이 얼마를 넘으면 민주주의의 후퇴나 붕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였다. 우리 시대의 중심 이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발전에 성공한 국가들은 물론 세계 최고 선진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퇴락과 역진에 대해 근대화론은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일부 지표는 경제발전이 민주주의 후퇴로 연결된 세계 ‘일반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비자유주의적 체제를 고수·지속·심화하고 있는 많은 사례에 대한 설명도 불가능하다. 중산층이 넘쳐나는데도 그들이 주도하는 민주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급진이론에 대해 따져보자. 중국은 오늘날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철학과 이론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증거하는 대표 사례다. 사회주의 교의에 따르면 사유재산은 빈곤·궁핍과 불평등을 낳는 착취와 소외, 그리고 계급독재와 계급투쟁의 원천이다. 따라서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위해서는 사유재산 철폐는 필연이다. 국가소멸도 같다.

그러나 공산당과 사유재산을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현실은 완전 반대다. 가장 큰 역설은 중국에서 공산당 성장 및 당원 급증이 사유재산 증대, 시장경제 발전, 그리고 불평등의 악화와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사유재산 철폐 및 평등의 실현과 함께 발전한 것이 아니다.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때 당원 수는 57명이었다. 1949년 건국 시는 448만 명, 개혁개방 시점에는 3700만 명에 달했다. 인구비례로는 각각 0%, 0.8%, 3.8%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시장화와 사유화로 치달았다. 그런데 공산당원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급성장하였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공식화한 이후 더 빨리 성장하였다. 개혁개방 10여년 만에 당원 수는 5000만 명을 돌파했고(1992년), 이후 한 세대 만에 현재 1억 명을 넘었다. 그리하여 지금 인구 대비 당원 비율은 7%에 달한다. 이 거대 괴물 공산당은 국가 소멸은커녕 국가의 온 촉수를 다 장악하고 있다. 국가의 시장화·사유화와 공산당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잘 알려졌기에 불평등 하나만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지니계수를 보면, 국가의 재분배 역할을 가늠하는 세후 소득 기준으로 개혁개방 이후 소득 불평등은 계속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최악의 불평등 국가의 하나인 미국보다도 더 나쁘다. 즉 ‘분배! 분배!’를 외쳐온 사회주의 원리에 비추어 재분배 역할에 관한 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도 더 나쁘다. 국가 역할이 사회주의 이론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중국의 상위 1% 및 10%의 부 점유율은 미국 수준으로 급증한 반면 하위 50%는 계속 하락하여 더욱 작아졌다. 기업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초거대 기업 소수가 차지하는 시가총액과 자산 비중은 놀랍다.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절대적 초거대 부자인 억만장자의 숫자는 급증을 거듭하여 최근에는 미국보다 크게 많을 정도다.

최근 만난 많은 국제학자는 세계 학문의 실패에 대해 함께 담론하여 공동의 출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맞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간절한 간구로 인류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평화의 보편 문명을 향한 사유와 실천을 이끈 선구자들을 떠올려 본다. 한국은 어떤가?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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