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국면은 우리 경제를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일련의 경제위기가 외생적 요인으로 촉발되었다면, 작금의 위기는 대통령의 정책실패와 정치무능에서 비롯되었다. 대외신인도가 추락하는 가운데 환율 급등과 주가 하락으로 한국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세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면서까지 추진한 기업의 밸류업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정치불안으로 증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 예산감축에 대해 국가재정을 농락하는 폭거로 비난하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감액된 4조1091억원은 2025년도 총지출의 0.6%에 불과하고, 예비비와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상환이 감액 예산의 70.6%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부에 예산안 제출권(제54조2항)을, 국회에는 예산안에 대한 심의·확정권(제54조1항)을 부여하고, 감액은 허용하면서도 정부의 동의 없이 증액이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제57조) 있다. 대통령의 ‘예산 폭거’ 발언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이다.
국회의 예산심의가 파행으로 치닫게 된 것은 민주당의 ‘예산 탄핵’이 아니라 위기의 경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정부의 부실한 예산편성 때문이다. 윤 정부는 출범 직후 경제운용의 목표를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의 선순환에 두고 4대 정책 기조를 발표했지만, 낙수효과와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기반으로 하는 성장우선주의에 사로잡혀 한국을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몰아갔다.
무엇보다 경제운용의 기조를 민간기업과 시장 중심으로 전환하고,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필요한 사회적 규제마저 철폐했다. 과도한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불공정 행위의 엄단을 공언했지만,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행위는 줄지 않고, 대기업 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심화되었다. 경제체질의 개선을 강조했지만 초저출산, 기후위기와 기술변화, 지경학적 분절화 등 구조적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공정한 기회의 보장은 부자감세로 퇴색하고, 약자복지는 예산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경제정책의 실패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부자감세와 건전재정은 긴축재정으로 이어져 경기회복을 가로막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지역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세수결손으로 고교무상교육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산업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투자국가로서 정부의 역할은 실종되었고, 트럼프의 관세장벽으로 미·일에 편중된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고 거버넌스를 해체하여 대안 경제의 가능성마저 차단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성장률 전망치의 하락으로 4년 뒤에는 무려 388조원가량의 국가채무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위 ‘자멸적 긴축재정’이 우려되고 있다.
성장세의 약화와 함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순자산 지니계수(가계금융복지조사)는 2022년 0.606에서 2024년 0.612로 증가했고, 상하위 20% 가구의 시장소득 격차(가계동향조사)는 2022년 3분기 11배에서 2024년 13.4배로 확대되었다. 집값이 상승하고, 경기침체의 충격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강타하고, 노동시장에서 이중구조의 골이 깊어진 결과이다.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는 반면 여성 노인의 생계형 취업과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도 큰 폭으로 벌어졌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하락하고, 임금체불 규모는 역대 정부 중 최고 수준이다.
더욱이 전세사기 광풍으로 청년과 서민의 피해가 속출함에도 정부는 임차인 보호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높은 가계부채비율과 고금리로 금융약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막대한 초과이득을 챙긴 은행에는 최저 수준의 횡재세조차 부과하지 않았다. 반면에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지역화폐법, 전세사기특별법, 노란봉투법 등 민생지원법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줄줄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윤 대통령의 정책무능으로 민생경제가 팍팍해졌다면, 정치무능은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낙수에 휩쓸리고 정치불안으로 표류하는 민생경제를 구하려면, 윤 대통령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는 조속한 탄핵으로 대응해야 한다. 여당은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거대한 함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