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가 느낀 '조선의 냄새'부터 백석 시와 이효석 수필의 향취까지[BOOK]

2025-10-24

찰나의 기억, 냄새

김성연 지음

서해문집

문: 조선의 냄새는 어떠합니까.

답: 공기가 매우 깨끗하여 향취가 납니다. 더욱이 이 해운대는 파도 소리도 있고 온천도 있어 상쾌합니다.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사람은 1937년 일본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헬렌 켈러.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역경을 극복한 인물로 당시 조선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그가 후각을 통해 느끼고 정보를 통해 파악한 조선의 인상이 흥미롭다. 이후 대구, 경성, 평양 등 순회강연을 펼친 지역에 대해서도 그가 냄새와 바람의 감촉 등을 통해 느끼고 언급한 내용이 당시의 보도를 통해 전해진다.

하지만 조선의 냄새가 이방인에게 향취만은 아니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을 찾은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는 각종 오물이나 음식을 아울러 강렬한 냄새 얘기가 등장한다. 천연두나 콜레라로 숨진 뒤 방치된 시신의 냄새를 포함해서다. 물론 문화는 상대적인 것. 선교사의 기록 중에는 반대로 미국을 다녀온 조선 양반에게 뉴욕에 대해 묻자 "그 끔찍한 먼지와 냄새" 빼고는 참 좋다고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 책 『찰나의 기억, 냄새』는 이처럼 근대 이후를 중심으로 문헌과 문학에 담긴 냄새의 면면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조명한다. 1930년대 채만식 소설 『탁류』에 나오는 '오리지나루' 나 '헤리오도프' 같은 일제 향수 브랜드가, 해방 이후 신문 연재소설에서는 불란서 향수와 '코티분'으로 바뀐 것을 비롯해 별별 얘기가 세세히 등장한다.

특히 문학 작품에 나오는 냄새 얘기는 이 책의 중심. 낙엽 태우는 냄새에서 갓 볶아 낸 커피 냄새, 잘 익은 개금 냄새를 맡았던 이효석의 감각적 수필과 소설, 음식 만드는 과정의 정취와 냄새를 공동체의 경험으로서 묘사한 백석의 시에 대한 대목은 해당 작품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모두 웅성웅성 깨여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각에 파에 청각에 마늘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염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개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갔다" (백석의 시 '추야일경'에서)

이효석 소설에도 등장하는 구라파 냄새와 향토적 냄새의 대비에서 보듯, 냄새는 시대상 역시 풍긴다. 모던보이 이상, 『무정』의 이광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만세전』의 염상섭 등이 묘사한 냄새 얘기는 이들의 작품을 냄새라는 초점으로도 한층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 SF로도 꼽히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는 희한한 연구와 함께 '똥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눈길을 끈다.

현대에 이르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 최일남의 '서울 사람들',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등에 담긴 냄새 얘기와 그 상징성이 더욱 다채롭게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 대목은 미래의 냄새. 1930년대 올더스 헉슬리와 1950년대 레이 브래드버리에 더해 김초엽의 최근 작품까지 아우르는 SF속 냄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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