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주말 안방극장은 ‘회사 이야기’로 뜨겁다. tvN <태풍상사>와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 이야기)가 그 주인공이다. 두 드라마의 시대는 다르지만, 직장인들의 생존과 애환을 실감나게 그리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태풍상사>의 배경은 IMF 구제금융 직후, 모든 것이 무너진 1990년대 후반이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퇴출’과 ‘구조조정’이라는 낯선 단어로 뒤덮였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주인공 강태풍(이준호)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고꾸라진 아버지의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중소무역회사 사장 아들로, 자유분방한 ‘오렌지족’으로 살던 그가 불굴의 근성과 동료애, 정면승부로 숱한 위기를 돌파하며 상사맨으로 거듭나는 여정은 IMF를 딛고 풍요를 재건한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를 압축한다.

드라마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상사맨들의 재치와 생존력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캐롤이 울리는 크리스마스 거리, PC 통신, 삐삐와 컴퓨터 모뎀 소리 같은 디테일로 9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재현하며 산업화 세대의 향수와 추억을 복원하는 것도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다. 주제와 다소 동떨어진 로맨스, 시대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방영된 10화는 9.4% 시청률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낙수는 정반대 시대를 살고 있다. 대기업 25년 차, 서울에 월세도 전세도 아닌 ‘자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전업주부인 아내와 명문대생 아들까지 둔 그야말로 ‘성공한 중년’이다. 김 부장은 스스로 “위대한 삶”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마음속은 늘 불안하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패감과 초조함에 시달리느라 웃을 새가 없다.

드라마는 중년 직장인들의 공허함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팀장 승진에서 밀리고, 신입사원과의 소통은 어긋나며, 가정에서는 무기력한 가장으로 전락한 김 부장은 회사와 사회, 가족 사이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성공한 중년 남성’의 초상이자,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직장인의 자화상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데 행복하지 않은” 김 부장의 현실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 그 불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 모두 70년대 초반생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IMF를 정면으로 맞은 세대이자, 지금은 사회와 조직의 중추가 된 세대다.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일어날 일만 남은 강태풍과 다 이뤘지만 불행한 김 부장의 이야기는 각각 패기와 희망, 공허와 불안으로 대표되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저성장 사회 속 풍요속에 빈곤을 사는 현대인의 모순된 현실을 드러낸다.

두 드라마의 인기 요인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태풍상사>는 ‘근본 있는 인간극장’에 목말라하던 시청자들에게 오랜만에 아날로그 감성과 인간미를 선사한다. IMF라는 절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태풍상사> 속 인물들은 좌절보다 연대에 더 익숙하다. 서로를 토닥이고 북돋아 주며, 실패 앞에서도 다시 손을 내미는 인간적인 정서 또한 우리가 그리워 하는 것이다. <김 부장 이야기>는 부동산, 승진, 노후 대비 등 현실적인 소재들을 웃음과 버무리며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노동’과 ‘생존’을 큰 화두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는 달라도 생존을 위한 치열함은 변하지 않았다. 강태풍은 외부의 폭풍에 맞서 싸웠고, 김 부장은 끝없는 비교와 자기소모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공허함과 싸운다. 결국 두 작품 모두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생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