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종목이 있다. 바로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의 장점을 결합한 듯한 ‘피클볼(Pickleball)’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규칙과 쉬운 접근성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어 ‘차세대 생활 스포츠’로 주목받고 있다.
■유래와 탄생 배경 : 피클볼은 1965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베인브리지섬에서 유래됐다. 당시 의회 의원과 친구가 여름방학 동안 놀 거리가 없던 아이들을 위해 집 마당에 있던 배드민턴 코트에 임시로 장비를 갖추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탁구공과 비슷한 플라스틱 공과 임시 패들을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유한 규격과 장비가 마련되며 하나의 정식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규격 : 코트 크기는 가로 6.1m, 세로 13.4m로 배드민턴 복식 코트와 유사하다. 네트 높이는 86㎝로 테니스보다 낮다. 라켓은 단단한 합성 소재 패들을 사용하며 공은 구멍이 뚫린 플라스틱 볼이다. 경기는 단식과 복식 모두 가능하며 11점제 랠리 포인트 방식이 일반적이다. 네트 근처 2.13m 구역은 ‘노 발리 존(Non-Volley Zone)’, 일명 ‘주방(Kitchen)’이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공이 바닥에 한 번 튀긴 후에만 칠 수 있다. 이 독특한 규칙은 피클볼만의 전략성과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코트가 좁아 한 명이 한발짝만 움직이면 코트를 커버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부상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친구, 연인, 부자, 모녀 등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할 수 있다.

■점수 획득 방식 : 서브하는 팀만 점수를 낼 수 있다. 배드민턴처럼 랠리 포인트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즉, 랠리 과정에서 상대 팀이 범실을 해야만 서브권을 가진 팀이 점수를 얻게 된다. 반대로 리시브 팀은 점수를 얻을 수 없고, 상대의 범실 시 서브권만 가져오게 된다. 기본적으로 11점제다. 반드시 2점 차 이상을 내야 승리할 수 있다. 11-10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기가 계속 이어지며 승부가 날 때까지 듀스 형태로 진행된다. 공식 토너먼트에서는 경기 성격에 따라 15점제나 21점제도 활용된다.
■다른 라켓 종목과 차별성 : 테니스보다 작은 코트와 짧은 랠리, 그리고 배드민턴보다 느린 속도로 진행돼 접근성이 높다. 라켓 스포츠 경험이 없는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주방 규칙 덕분에 무조건적인 네트 대시 플레이가 불가능해 경기의 흐름이 단순한 힘싸움보다는 기술과 두뇌 싸움에 가깝다. 짧은 반사 신경과 많은 움직임이 요구되는 하이브리드 성격 스포츠다. 2028년 LA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이 되지 못했지만,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에서는 가능성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기 확산 : 미국에서 피클볼은 이미 ‘국민 스포츠’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스포츠산업협회(SSF)에 따르면, 피클볼은 최근 수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종목으로 꼽힌다. 코로나19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급격히 확산됐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1만 개가 넘는 전용 코트가 있다. 프로 대회가 열리고 방송 중계도 이뤄진다. 유명 스포츠 스타와 할리우드 배우들까지 피클볼을 하면서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빌 게이츠, 엠마 왓슨, 테일러 스위프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그렇다.
미국에는 여러 개 피클볼 프로팀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조직은 2021년 출범한 메이저리그 피클볼(MLP)이다. 현재 MLP에는 프리미어 레벨 16개팀과 챌린저 레벨 6개팀 등 22개팀이 활동 중이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나오미 오사카 등이 팀 소유주다. 2022년 설립된 내셔널 피클볼 리그(NPL)는 50세 이상 시니어 프로 선수들을 위한 무대다. 미국에서는 피클볼이 단순한 생활 스포츠를 넘어 투자자와 유명인들이 참여하는 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피클볼 : 미국발 열풍은 이미 캐나다, 유럽, 아시아로 번지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에도 이미 보급됐다. 한국에는 2017년 소개됐고, 2018년 대한피클볼협회가 창립됐다. 고양, 성남, 안양, 용인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서울 강동구, 노원구, 마포구에 협회가 설립됐거나 전용구장이 설치됐다. 상급 지도자가 100명이 넘고 상급 심판도 200명 가까이 있다. 국내에는 동호인 약 10만 명, 클럽 500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원주, 제주, 광주, 화순 등에서는 일정 규모를 갖춘 대회가 열리고 있다. 대한피클볼협회 조현재 회장은 “내년에는 17개 시도 중 절반이 단체를 창립하고 시도별 굵직한 대회를 여는 등 피클볼 도약기로 삼고 있다”며 “3,4년이 지나면 한국에서도 피클볼 단체들이 조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