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리기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마라톤 선수의 꿈을 꾸며 인후동(지금 전주 위브어울림 근처)에서 초포다리까지 왕복 10km를 뛰어서 다녀오곤 했다. 가난한 집안 탓이었는지 어린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마라톤 뛰는 선수가 멋있어 보였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잘하는 것이 오래 달리기였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학교에서 전교생 마라톤을 뛰면 운동부 아이들과 겨눌 수 있을 만큼 잘 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 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선생이 되어 진안초에 근무할 때였다. 육상부가 있었는데(물론 지금도 있다) 아침에 일찍 와서 운동장을 돌고 하교 후에도 아주 열심히 뛰었다. 성적도 아주 좋았다. 잘 달리는 육상부 아이들 가운데 우리가 상상하는 날렵한 몸매를 지닌 육상부가 아닌 뚱뚱한 몸으로 달리기를 꾸준히 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른 육상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운동장을 열심히 돌았고, 6개월을 열심히 뛰니 25kg이나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졌다. 무엇보다 학교생활 태도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아주 좋아졌다. 그 아이 말고도 육상부를 열심히 하면서 달리기에 최적화된 몸으로 변화하고 학업능력도 아주 월등하게 나아지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요즘 달리기가 열풍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달리기가 인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둘레 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한다.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진안 공설운동장에 나가 달리기를 하는데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30명 넘는 분들이 운동장을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새 숨이 차오르며 심장이 터질 듯하고 발에 무거운 것을 매단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도 조금 더 달리고, 조금만 더 달리면서 차츰 고비를 넘다 보면 달리는 거리가 점차 늘어나고 마치 심장이 리듬을 알아차리 듯 심장과 호흡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류는 사냥감을 쫓거나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진화하고 달리는 것에 행복한 상태를 느끼게 된다.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은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하다.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 이를 ‘러너스 하이’라고 부른다. 달리기를 하면 뇌에서 천연 진통제인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분비하면서 고통은 사라지고 쾌감만 남는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로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진이 우울증 환자 156명을 대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그룹과 달리기 그룹으로 나누어 4개월 동안 실험을 했는데 놀랍게 달리기 그룹과 약물치료 그룹이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더군다나 10개월 뒤 재발률은 약물치료 그룹이 38%인데 비해 달리기 그룹은 8%로 훨씬 높은 효과를 보였다. 이는 일시적으로 달리기가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근본 변화에 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학교혁신, 누가 막고 있는가?
아이들 학습 능력에도 효과가 있을까? 물론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과 한 고등학교가 협력하여 수업 시작 전 아침 운동이 학습 능력에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했다. 1.6km 전력 질주 달리기를 하고 바로 이어서 수학과 과학 같은 어려운 수업을 배치했는데 그 결과 국제학업성취도 평가(1999)에서 과학(1위)과 수학(6위)에서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하버드대 존 레이티 교수는 “달리기를 하면 뇌는 학습할 준비를 한다.”며 달리기의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했다. 우선 달리기를 하면 뇌로 향하는 혈액이 증가하고, 새로운 뇌세포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 그 뇌세포가 활동할 수 있도록 뇌를 쓰는 어려운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거다.
체험학습조차 가기 어려운 학교 현실에서 달리기까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싶어도 자꾸만 학교와 교사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사회 풍조는 학교와 교사들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학습에 대한 실험과 과감성마저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반 아이들과 아침에 운동장이라도 달려보려고 한다.
윤일호 안천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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