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늘처럼 얇은 불꽃이 하늘에서 하나둘 떨어졌다. 하늘은 새까맣고 태양은 유달리 빨갛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사람이 걷기조차 힘든 속도의 바람이 불자 얇은 불꽃은 순식간에 전구만 한 덩어리가 됐다. 나무데크에 불꽃이 내리꽂히면서 순식간에 온 집안에 불이 붙었다. 이재민 김남수씨(58)는 지난 3월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의 자신 집을 덮친 불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모든 걸 잃었다. 집은 물론 복숭아, 고추, 배추 농사에 필요한 농기계 모두 타버렸다. 가장 마음이 사무친 건 불이 날 때 도망치느라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한 반려견 구름이다. 구름이는 다 타버린 채 다음 날 발견됐다. 구름이를 묻어줄 때 그는 많이 울었다. 그는 말했다. “물난리·불난리가 나면 누가 피할 수 있나요? 애초에 시골에 사는 게 잘못이지.”
산불과 수해는 예고되지 않은 재난이다. 재난 상황은 도시에서도 온종일 뉴스로 전달받는다. 그럼에도 이를 자기 일처럼 실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찰나에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 들어가서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던 주거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런 질문을 김씨를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집은 ‘주거’보다는 ‘자산’의 문제였다. 당장 지난 6월 정부가 내놓은 6억원 대출 규제가 집값·전셋값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주거사다리’란 계층 이동의 향방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자산 가격이 안정됐다는 믿음에 수도권에 사는 걸 안도하고, 기후재난은 영원히 남의 일처럼 대해온 지독한 무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 적도 있다. 김씨가 내 앞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털어놓을 때, 나는 내 안의 속물성을 비로소 마주했다.
무지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또 세상은 그럭저럭 돌아간다. 약자가 약자를 돕는 아이러니한 일도 벌어진다. 김씨는 지난 7월 22일 다른 이재민 11명을 이끌고 수해 이재민을 돕기 위해 경남 산청으로 향했다. 불에 탄 자신의 집은 철거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인데, 그는 다른 피해자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산청에 다녀왔다. 더 많이 줄 수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이런 마음은 어디서 출발하는 것일까. 대출 규제 발표에 수도권 자산 가치 등락의 주판알을 튕기는 나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