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65〉일자리 문제는 시간 싸움

2024-12-26

경제가 큰 일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청년 대졸자 비율이 70%가 넘는 수준이지만, 청년들은 자신들이 받은 교육 수준이나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수 년을 지속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여러 나라에서 발호하고 있는 정치적 극단주의, 그리고 서방과 중러의 정치적 긴장 등 혼란스러운 환경하에서 코로나19때 풀린 엄청난 양의 유동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실업으로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양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청년세대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이제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방향을 정확히 간파하고, 해당 분야의 인재들을 신속하게 배출해야 한다.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의 대학 교육은 정원과 전공 구성에 있어서의 자율성이 대단히 높다. 인공지능(AI) 바람과 함께 컴퓨터 공학 수요가 급증하자, 세계적 주요 명문대학들은 관련 전공을 수천명까지 늘리면서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대형 강의를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은 산업 수요가 높은 직종의 인재들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현장 인력 수요를 맞추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교육 4년은 산업 수요에 즉각 부응하기에는 느리고, 그래서 현장에서는 쓸만한 AI 분야 인재가 없다고 난리다.

새롭게 부상하는 산업 분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양자, 나노기술, 블록체인, 메타버스, 드론, 로봇, 디지털 헬스, 신약 개발, 대체에너지, 수소, 원자력, 반도체 등의 영역에서는 조만간 AI 분야 못지 않은 인재난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제 도입되기 시작한 자유전공의 소수 정원이나 기존 교수들의 학위 분야에 맞춰 개설된 기존 학과들은 신분야 인재 수요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다. 자동차 산업에 비유하자면, 차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SUV를 원하는데, 생산 라인이 세단에 맞춰져 있다고 수요를 무시하며 줄곧 세단만 생산하는 격이다. 그런 공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매출 감소로 고용을 줄여야할 것이며, 그러다보면 지역 경제는 망가질 것이다. 우리의 경직된 인재 배출 구조가 바로 이런 형국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새로이 부상하는 산업 분야가 기초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양자물리학의 이론적 진보가 양자컴퓨팅의 기초가 되고, 수학의 발전이 새로운 AI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AI가 생물학, 화학이 결합하면 신약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인문학 등의 기초 학문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식 생태계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방위산업이나 조선업이 세계의 호응을 받고있는 이유는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납기를 잘 맞추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K산업의 특성을 다른 분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은 일자리가 생기는 분야의 전공자를 적시에 배출하되 청년 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기회를 찾는 중장년 층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저렴하게 열어야 한다. 다양한 기초학문의 연구 지원 프로그램과 커리큘럼은 더욱 풍성하게 운영하고, 기업과 연계된 계약 학과 등은 더 많이 개설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를 푸는 핵심은 그 적시성에 있다. 실업자 보호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일자리를 이른 시간 내에 찾을 수 있도록 재교육과 전공 전환 프로그램 제공 역시 중요하다.

이 짙은 안개도 언젠가는 걷힐 것이다. 어려울수록 뭉쳐서 이겨내는 우리의 저력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유연한 학제와 신속한 인력 공급으로 이 어둠을 뚫고 비상할 때가 되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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