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에선 급격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초기에 자살률 증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간이 지나 장기적인 성장이 이어질 때는 반대로 자살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동욱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휴먼시스템의학과 이나미 교수 연구팀은 경제성장과 자살률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진은 1991~2021년 30년간의 세계 198개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성장 여부와 국가별 소득수준 등의 요인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고소득 국가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초기에는 자살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이들 국가의 남성에게서 초기 자살률 증가가 두드러졌다. 반면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지속될수록 자살률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해 조사 시작 시점보다 더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부 국가에선 경제성장이 단기적인 자살률 증가를 부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 자살률이 증가하는 경향도 함께 확인됐다. 이런 모습은 특히 중·저소득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경기침체와 자살률 사이의 관련성을 재확인시키는 한편, 통념과 달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변화의 폭이 가파를 땐 남성을 중심으로 자살률이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급격한 경제성장이 기존 사회적 구조와 역할 체계를 붕괴시킨 결과 기존 규범이 무력화된 ‘사회적 아노미’ 상태를 유발해 사회 구조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동욱 교수는 “경제성장은 일반적으로 긍정적 변화로 인식되지만 그 속도와 기간에 따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정반대일 수 있다”며 “뒤처지는 사람 없이 함께 성장의 혜택을 누리도록 사회복지·정신보건 등 사회안전망을 함께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