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학생들 성적이 떨어진다고?

2025-07-10

종말론적 재앙 시나리오 아닌

기후변화의 사회적 비용 주목

범죄 늘고 경제 생산량은 줄어

국가·계층 따라 피해도 불평등

사회안전망 통한 해법에 ‘기대’

살인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뭄에 의한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고, 선진국에서는 빙하가 너무 빨리 녹아내리는 바람에 해안의 대도시가 물에 잠긴다. 초대형 화재가 지상을 쓸어버리고, 바다에서는 수중 생물이 대량으로 폐사한다. 공기는 오염되고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급기야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임박한 기후재앙에 묵시록적 비전은 대체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된다. 뉴욕매거진 부편집장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일상 자체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도의 가격

박지성 지음 | 강유리 옮김

윌북 | 408쪽 | 2만2000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및 와튼스쿨에 재직 중인 환경경제학자 박지성 교수는 <1도의 가격>에서 거대 스케일의 기후재앙 대신 서서히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의 사회적 비용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인체에 비유하면, 갑작스럽게 닥칠 ‘심장마비’의 공포에 짓눌리지 말고 악화하는 ‘만성염증’부터 관리하자는 것이다. 기후재앙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은 현실적으로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재앙보다는 느린 연소, 즉 보이지 않는 비용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느린 연소는 재앙만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도달 범위가 더 넓고 불평등하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해로울 수 있으며 미처 예상치 못한 방식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는 “학습 방해, 작업장 사고 위험 증가, 강력 범죄율 상승, 기업 생산량 하락, 노동자 생산성 저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문제들은 특정 시점에서는 사소할 수 있지만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학생과 노동자,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가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더위는 건강을 위협한다. 1968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사망자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기온이 32.2도인 날이 하루 늘어나면 연간 사망률이 0.1% 높아졌다. 아주 더운 날이 하루 더 늘어나면 미국에서 연간 3000명이 더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3000명은 9·11테러 당시 사망자(2977명)보다 많은 규모다. 문제는 2010년 이전 미국의 일반적 카운티에서 평균 기온이 32.2도를 넘은 날은 연간 약 1일이었으나 2070~2099년 사이에는 연간 약 43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부유하고 냉방 장치가 잘 보급된 국가에서 온난화로 인해 향후 연간 12만9000명이 더 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시험 점수가 낮아진다. 미국에서는 실외 온도가 32.2도인 날 시험을 칠 경우 성적이 3~4점 떨어졌다.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이는 중위권 학생의 경우 21.1도에서 시험을 치렀을 때와 비교해 해당 과목에 합격할 확률이 약 10% 떨어진다는 뜻이다. 미국 학생들의 학업성취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시험 당일 기온 상승이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친 결과 고등학교를 정시에 졸업하지 못한 학생이 9만명에 이르렀다.

더위는 범죄율도 높인다. 미국 경찰이 보유한 형사 범죄 데이터와 1980년부터 2009년까지 해당 지역 일일 기온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32.2도 이상 기온이 일주일간 지속된 경우 월간 강간 범죄율이 5% 이상 증가했고 살인 등은 3%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더워질수록 공격성이 증가한다는 우리의 통념도 데이터로 입증된 상태다.

더위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기온이 2도 올라가면 경제 생산량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3%(4200억~6300억달러) 줄어들 수 있다. 이는 2021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 10개의 1년치 수익을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다.

온난화의 사회적 비용은 국가와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매겨진다. 평균 기온이 1도 더 높은 국가의 1인당 평균 소득은 평균 8%가량 더 낮고, 평균 기온이 1도 더 높은 나라의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시험에서 표준편차보다 8% 더 성적이 낮다.

주로 북반구에 위치하는 부유한 나라들은 온난화로 인해 더운 날이 늘어나서 받는 피해보다 추운 날이 줄어서 얻는 이익이 더 클 수도 있다. 예컨대 저자에 따르면 독일은 기후변화로 인한 예상사망률이 10만명당 150명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아프리카 가나는 향후 연중 32.2도를 넘는 날이 약 120일 늘어나면서 사망률이 10만명당 160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같은 국가, 같은 지역이라도 기반시설과 소득수준에 따라 더위에 노출되는 수준에 차별이 존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소득 최하위 20%가 거주하는 구역은 32.2도 이상인 날이 연중 70일이지만, 최상위 20%는 연중 26일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저자의 접근은 ‘점진적 낙관주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탄소배출을 일거에 줄일 ‘은빛 탄환’(만능해결책)이 없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사회안전망을 충실히 설계해 기후위기의 차별적 영향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더 긴급한 과제일 수도 있다. 저자는 “오히려 복잡하고 자잘한 조정을 통해 기후변화가 가져올 다양한 위험 앞에서도 좀 더 탄력성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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