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물도 상관없다. 기록만 내달라.
내년 인핸스드 게임즈(Enhanced Games) 개최를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인핸스드 게임즈는 호주 사업자 에런 드수자가 기획했다. 내년 5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코카인, 헤로인 등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대회 장소인 네바다주가 금지하는 마약류를 제외하고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 등 세계도핑방지기구(WADA)가 금지하는 약물 복용이 허용된다. 각 종목 단체가 불허하는 최첨단 신발, 유니폼 착용 등 이른바 ‘기술 도핑’도 모두 가능하다. 스포츠 권력을 틀어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수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노력과 성치에 걸맞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드수자의 주장이다.
대회 측은 수영, 육상, 투기 종목 등을 인핸스드 게임즈의 주요 종목으로 꼽는다. 각 종목 1위에게 상금 50만달러(약 6억9000만원)를 걸었다. 육상 100m와 수영 자유형 50m에서 세계기록을 넘어서면 100만달러(약 13억8000만원)를 주겠다고도 했다. 거액의 돈을 앞세워 선수들을 유혹 중이다. ESPN 등 보도에 따르면 대회 측은 초기 단계부터 수백만 달러 규모 투자를 확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해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독일 투자자 크리스티안 앙거마이어 등이 투자자로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틸과 앙거마이어는 환각제를 치료제로 활용하겠다며 함께 회사를 세우고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대회 측은 17일 홈페이지에서 “미국 프레드 컬리가 육상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리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컬리는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은메달리스트다. 2024 파리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컬리보다 앞서 파리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50m 은메달을 차지한 영국 벤 프라우드도 출전 의사를 밝혔다. 프라우드는 BBC 인터뷰에서 “인핸스드 게임즈에서 우승하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3번 우승했을 때와 같은 금액의 상금을 받는다. 명예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비판은 거세다. WADA는 “선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사”라고 비판했다. 영국수영연맹은 프라우드가 인핸스드 게임즈 출전을 선언하자 “프라우드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국반도핑기구 회장은 “광대극”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WADA는 미국 당국에 대회 불허를 촉구하고 있다. 대회 측은 이에 맞서 지난 8월 WADA, 세계육상연맹, 세계수영연맹을 상대로 최대 8억 달러 규모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