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반한 ‘대학생 작가’는

2024-10-03

크리스티 소유주인 피노 소장품 60여 점

13년 만에 한국 찾아 ‘송은’ 전시

얼굴이 가려지고 뒤틀린 ‘흑인 여성 그리스도’. 두 다리는 피의 웅덩이에 뛰어든 듯하고, 두 손은 벽에 못 박혔다. 몸체 옆에는 잘린 얼굴이 표정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쨍한 노란색 바탕의 캔버스와 파란색, 붉은색 등 원색과 함께 그려져 공포스러움과 함께 경쾌함을 느끼게 한다. 모성과 극단적 폭력, 삶과 죽음 등 모순되는 요소들을 강렬하고도 감각적으로 배치했다.

프랑스 작가 폴 타부레의 ‘내 천국의 수영장(My Eden’s Pool)’(2022)이다. 타부레는 이제 27세의 젊은 예술가지만, 세계적 갑부이자 현대미술 컬렉터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피노는 타부레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부터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생 로랑의 모기업인 케어링 그룹의 설립자이자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의 소유주인 피노의 컬렉션을 서울 강남구의 미술관 송은에서 열리는 ‘소장품의 초상: 피노 컬렉션 선별작’에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품 컬렉터인 피노는 50년 동안 1만점 이상의 작품을 수집했다. 한국에서 13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피노 컬렉션에서는 마를렌 뒤마, 미리엄 칸, 뤼크 튀망 등 주목받는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회화, 조각, 비디오, 설치 등 60점을 선보인다. 2011년 한국 첫 전시에서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전시는 베트남 전쟁 직후 유럽으로 이주한 ‘보트피플’인 얀 보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청동기 시대의 도끼날, 1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성모자상 등 서로 다른 역사적 시간을 지닌 재료들을 혼합하고, 성모자상의 일부를 절단해 역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데이비드 해먼스의 ‘러버 드레드(Rubber Dread)’(1989)는 자전거 튜브를 땋아 늘어뜨린 모습이 흑인들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킨다. 곱슬거린다는 이유로 천대받았던 흑인 노예들의 머리카락과 17~18세기 노예 범죄를 관장하던 백인 치안판사의 가발을 동시에 암시한다.

2층 공간은 미리엄 칸, 마를렌 뒤마의 강렬한 인물화를 볼 수 있다. 미리엄 칸의 ‘나무 생명체(Baumwesen)’(2019)는 나무 뿌리를 연상시키는 목과 찌푸려진 미간 사이에 일그러진 입을 그려넣었다. 붉은 입 속 치아는 마치 조각칼로 파낸 듯 움푹 패여 있다. 분홍과 빨강의 색조가 인물의 단순화된 표정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유럽의 대표하는 화가 뒤마의 ‘교복 입은 천사들(Angels in Uniform)’은 고아원 어린이들의 초상을 그렸다. 지우개로 지우거나 물감으로 뭉개버린 듯 흐릿한 아이들의 표정에서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고아원의 전체주의적 분위기와 불안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가 인공지능(AI)를 이용해 만든 작품, 한국인 작가 염지혜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1월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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