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팀 시절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형들과 같이 훈련하는 게 너무 신기해요.”
프로축구 FC서울의 신인 공격수 바또 사무엘(19·코트디부아르)은 프로에서 첫 훈련을 마친 소감을 들뜬 표정으로, 또렷한 한국말로 밝혔다. 사무엘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국적이지만 ‘외국인 선수’ 대신 ‘신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K리그 최초로 ‘홈그로운(home grown)’ 제도를 통해 프로 무대에 진출한 선수라서다.
서울 구단은 지난 3일 “코트디부아르 국적의 오산고 졸업생 사무엘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홈그로운 제도는 외국 국적의 유소년 선수가 국내 아마추어팀 소속으로 5년 이상 또는 3년 연속 활동하면 K리그 선수 등록시 외국인이 아닌 국내 선수로 간주하는 규정이다. 유럽에선 일찌감치 뿌리 내린 방식이지만, K리그는 올해 처음 도입했다. 최근 경기도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사무엘은 “K리그에서 ‘1호 홈그로운’ 선수로 기록돼 기쁘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중요한데, 좋은 선례를 남겨 비슷한 길을 걸을 후배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 모두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사무엘은 2006년생으로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자국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와 손흥민 중 한 명을 고른다면”이란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만큼 한국 문화와 생활에 익숙하다. 무용수 출신 부모의 운동 DNA를 물려받은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육상·농구·축구 등 하는 종목마다 일취월장했는데, 그중에서도 축구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사무엘은 “내 나이 또래 이태원 일대에서 축구 좀 했다는 친구 중에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동네 축구를 뛰어넘어 엘리트 선수로 거듭난 건 오산중 1학년 겨울부터. 일반 학생이던 그는 일부러 축구부(FC 서울 유스)가 훈련하는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다. 남다른 스피드와 탄력을 눈 여겨 본 당시 오산중 축구부 코치가 테스트 경기를 제안했는데, 1학년이던 사무엘이 2학년 선수들과 함께 뛰며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곧장 합격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엘리트 축구의 벽은 높았다.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개인의 운동 능력 만으론 상대를 압도할 수 없었다. 일찍 축구를 시작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본기도 턱 없이 부족했다. 그저 그런 선수로 오산고에 진학한 그는 매일 팀 훈련을 마친 뒤 따로 한 시간 이상 개인 훈련에 매달렸다. 조그마한 과녁을 세워 놓고 멀리서 패스와 슈팅을 반복하며 정확성을 키웠다. 그렇게 실력과 자신감을 키운 그는 무섭게 성장해 2학년 무렵 고교 축구 톱클래스 측면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사무엘은 “100m를 11초에 뛴다. 발이 빠르니 고등학생 땐 어떤 상대든 마음만 먹으면 제칠 수 있었다. 그런데 프로에 와 보니 노련한 선수가 많아 스피드 만으론 압도할 수 없다. 특히나 직접 겪어 본 제시 린가드와 (기)성용이 형은 다른 레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단한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 발인) 왼발 대신 오른발로도 정확한 슈팅을 때릴 수 있도록 훈련 중”이라고 밝혔다.
사무엘은 피지컬 만큼이나 멘털도 강하다. 고교 시절 경기 도중 툭하면 피부색과 관련한 인종차별 발언을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 선수에게 “친구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나한테 골 먹어서 너희 팀이 지고 있잖아”라며 웃어 넘겼다. 인터뷰를 마치며 올 시즌 목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선 첫 출전, 첫 어시스트, 첫 골에 집중하겠다. 꾸준히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 플레이어상(신인왕)도 욕심을 내 보겠다”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