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자유'로 충분할까[BOOK]

2025-10-17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오해

문재완 지음

늘봄

거짓말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음란표현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왜 평소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혐오표현 얘기가 나오면 규제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오해』는 이에 대한 지은이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답과 이유를 보여준다. 핵심은 현실에서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marketplace of ideas)이 무력한 공리공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사상의 경쟁을 통해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이 이론은 표현의 자유의 보루처럼 여겨져 왔다. 지은이는 언뜻 매혹적인 이 이론이 현실적 한계와 이론적 허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지은이는 음란물, 가짜뉴스, 혐오표현, 이적표현물, 언론과 플랫폼 등 현실의 여러 영역에서 사상의 자유시장이 답을 내리지 못한 사례를 조목조목 분석한다. 가령 사상성을 갖지 못하는 음란표현은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으로 다루기 어렵다. 허위사실 문제를 보면 미국은 거짓말까지 보호하는 판례가 있지만, 독일은 홀로코스트 부인을 형사처벌하는 등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책은 고(故)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음란물 판결, 다음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 사건 등 구체적 사례와 미국·독일·일본 등 국가별 비교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일반 독자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지은이의 결론과 도출 과정은 명확하다.

사상의 자유시장은 더 이상 표현의 자유 이론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의 보호 이유를 민주주의 원리에서 찾자며 이를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자유’가 아니라 ‘민주적 의사 형성에 기여하는 말을 할 자유’로 재정의한다. 이를 위해 화자의 권리뿐 아니라 청자의 이익까지 고려해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재구성하고, 위헌심사 기준 역시 민주적 기여도에 따라 차등화하자는 새로운 표현의 자유 이론을 제시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혐오표현·가짜뉴스 규제 대책, 인터넷 공론장 회복을 위한 제도 마련에 앞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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