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지키는 1년의 힘

2025-12-17

혈당이 약간 높지만 당뇨병은 아닌 사람을 당뇨병 전 단계라고 부른다. 보통 이 단계에서는 약을 쓰기보다 체중 감량, 운동, 식단 조절 같은 생활습관 개선을 권한다. 성공률은 낮다. 실제로 혈당을 정상 범위로 되돌리는 사람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생활습관을 잘 조정해서 혈당을 낮추는 데 성공해 그 소수의 사람에 포함된다면 과연 어떤 건강상 유익이 있을까.

20년 뒤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이나 입원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된 당뇨병 예방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다시 분석한 것이다. 원래 연구에서는 당뇨 전단계에서 제2형 당뇨병 발병에 미치는 세 가지 개입의 효과를 비교했다. 식단 조절과 운동을 포함한 생활습관 조정, 당뇨약 메트포르민 복용, 위약(placebo)이다. 임상시험 결과, 집중적인 생활습관 프로그램은 위약군에 비해 3년 내 2형 당뇨병 발병을 58% 감소시켰으며, 메트포르민은 31%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임상시험 참가자 2402명을 20년 뒤 추적했다. 원래 연구에서 약 11%의 참가자가 1년 후 정상 혈당 수치로 떨어졌다. 20년 후, 이들은 정상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심혈관 질환 사망이나 심부전 입원 위험이 50% 더 낮았다. 당뇨병 발병 여부를 포함해 여러 특성을 보정한 결과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중국에서 진행된 유사한 당뇨병 예방 임상시험 참가자 540명도 추적 분석했다. 6년 후 정상 범위로 혈당이 회복된 사람은 약 13%였다. 30년 후 이들도 정상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심장병 사망 또는 입원 위험이 51% 더 낮았다.

이런 결과를 두고 혈당만 낮추면 심장병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상 혈당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애초에 더 젊고, 혈당과 염증 수치도 더 좋고, 건강 행동에 적극적인 경향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체중·운동·식습관·음주량 변화를 추적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혈당 정상화가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남는다. 실제로 연구에서 혈당이 정상화된 그룹은 그렇지 못한 그룹과 체중 감량 정도가 비슷하더라도, 인슐린 민감성이 더 좋아지고 복부의 내장 지방과 염증 수치도 뚜렷하게 감소했다.

이번 연구는 유산 효과(Legacy Effect)를 보여준다. 1년만 집중해서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려놓으면, 그 긍정적인 효과가 20~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되며 혈관을 보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설령 나중에 다시 혈당이 오르거나 당뇨병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건강을 위해 생활습관을 조정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다. 새해에도 화이팅.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