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블랙홀은 검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2025-04-21

[비즈한국] 블랙홀은 우주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존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유명세에 비해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참 잘못 지어졌다는 아쉬움도 있다. 블랙홀을 직역하면 ‘검은 구멍’이란 뜻이다. 그런데 사실 블랙홀은 ‘검지’ 않다. 애초에 블랙홀은 색이 없다. 빛 자체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의 속도로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뜻에서, 시공간에 움푹 파인 깊고 깊은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어쩌다 보니 ‘검다’는 블랙이라는 말이 붙어버렸다. 차라리 어둠, 빛의 부재를 뜻하는 다크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감한 건 이게 다가 아니다. 블랙홀이 압도적인 중력 때문에 빛나지 않는 것은 맞지만, 굳이 말하자면 완전히 빛을 내지 않는 건 또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블랙홀 자체는 어둡지만, 블랙홀의 중력에 사로잡힌 그 주변 물질은 뜨거운 온도로 가열되며 빛을 낼 수 있다. 게다가 블랙홀 주변의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가속된 입자들 역시 신비로운 빛을 방출한다.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가시광선을 아득히 초월하는 엑스선, 감마선 수준의 아주 강한 고에너지 빛을 방출한다. 빛을 내지 못한다는 뜻에서 블랙홀이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정작 우주에서 가장 강렬한 빛을 내보내는 존재인 셈이다. 블랙홀은 그 이름부터 정말 모순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란 생각이 든다.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에서 나온 아주 흥미로운 빛이 포착되었다. 블랙홀이 고에너지 빛을 뿜어낼 뿐 아니라 그 빛이 깜빡이기까지 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현상을 ‘블랙홀의 깜빡임(Blackhole’s flickering)’​이라고 부른다.

우선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깊은 어둠 주변에 우주에서 가장 강렬한 고에너지 빛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주요 메커니즘은 블랙홀 주변을 에워싼 강착 원반에서 발생한다. 블랙홀 주변에 맛있는 먹잇감, 이를테면 가스 구름이나 별이 있다면 강력한 중력에 의해 점차 블랙홀 주변에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속도도 빨라진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면, 충분히 빠른 속도로 맴도는 물질들이 블랙홀의 중력을 견뎌내고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빠른 속도로 맴도는 물질끼리 서로 부딪쳐 마찰이 발생하고 뜨거워진다. 태양과 같은 일반적인 별 표면 온도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뜨겁게 가열된다. 그래서 강착 원반에서는 엑스선이 관측된다. 일찍이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방향에 주변 물질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무언가도 엑스선 관측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강착 원반이 뚜렷한 엑스선을 방출하는 동시에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쉽게 블랙홀의 존재와 질량까지 알 수 있다. 원반이 앞뒤로 회전하면서 일부는 우리 시선 방향으로 접근하고, 나머지 일부는 멀어지는 쪽으로 이동하며 관측되는 빛의 파장이 달라지는 도플러 효과를 겪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하면 블랙홀 중력에 붙잡힌 강착 원반이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 그리고 그 원반을 붙잡고 있는 중심 블랙홀의 질량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빛은 강착 원반에서 나오는 엑스선이 전부가 아니다. 주변에 먹잇감이 많은 은하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라면, 블랙홀에서 조금씩 벗어날수록 매우 다채롭고 복잡한 구조를 만날 수 있다. 강착 원반의 더 바깥에는 먼지 구름이 더 높은 밀도로 도넛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다. 블랙홀과 강착 원반을 에워싼 먼지 도넛은 엑스선 일부를 흡수하고 다시 미지근하게 달궈진다. 그 후 먼지 도넛은 좀 더 에너지가 줄어든 적외선 영역에서 그 빛을 다시 재방출한다. 이렇게 해서 관측되는 블랙홀의 전체 스펙트럼이 더욱 풍성해진다.

먼지 도넛에 엑스선이 얼마나 가려질지, 또 그 대신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도넛의 빛이 얼마나 많이 관측될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꽤 단순하다. 우리 하늘에서 봤을 때, 블랙홀 주변 원반과 도넛이 얼마나 크게 기울어져 보이는지, 즉 기울기다. 만약 먼지 도넛을 거의 옆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중심의 강착 원반과 엑스선이 상당히 많이 가려진 모습으로 보게 된다. 반대로 원반을 거의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거의 가려지지 않은 강력한 엑스선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스펙트럼 형태가 각기 다른 은하 중심 블랙홀들을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별개의 블랙홀로 추정하고 분류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보는 각도에 따른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의 통일된 그림으로 다양한 은하 중심 블랙홀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빛이 있다. 빠르게 자전하는 블랙홀은 그 자전축을 따라 아주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의 뜨거운 온도로 인해 이온화된 입자들이 자기장을 따라 나선을 그리며,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까운 빠른 속도로 가속된다. 입자가 가속되면 빛을 방출한다. 이렇게 방출된 빛은 엑스선에서 적외선에 이르기까지 넓은 파장 범위에 걸쳐 관측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싱크로트론 복사라고 부른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기본적으로 적외선으로 우주를 본다.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다양한 빛 가운데 오직 적외선만 본다. 천문학자들은 2023년부터 2024년에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에서 새어나오는 빛의 밝기를 2.1μm와 4.8μm 두 가지 적외선 파장에서 관측했다. 관측한 전체 시간을 누적하면 총 48시간 정도 된다. 블랙홀의 요동치는 밝기 변화를 공정하게 비교하기 위해 비슷한 시야에서 보이는 두 별을 기준 별로 삼았다. 관측 기간 내내 밝기가 거의 일정한 이 두 별을 기준으로 관측 순간 포착된 블랙홀 주변 빛의 세기를 표준화할 수 있다.

위 그래프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다. 파란선은 조금 더 높은 에너지에 해당하는 파장 2.1μm의 빛으로 관측한 변화고, 붉은선은 낮은 에너지에 해당하는 파장 4.8μm의 빛으로 관측한 변화다. 검은선은 함께 관측한 기준 별들의 일정한 밝기 변화 패턴이다. 기준 별들의 밝기 패턴과 비교하면 확실히 이 요동치는 밝기의 변화는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에서 벌어지는 실제 변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작게 요동치는 패턴과 함께 밝기가 ​갑자기 크게 ​증가했다가 내려가는 플레어와 같은 현상도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파란선과 붉은선을 비교하면 모든 데이터에서 흥미로운 패턴을 볼 수 있다. 항상 파란선이 먼저 정점을 찍고, 그 다음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붉은선이 정점을 찍는다. 즉 에너지가 더 높은, 파장이 짧은 빛이 먼저 반짝인 다음 뒤이어 약 30~40초의 간격을 두고 파장이 긴 빛이 반짝인다.

천문학자들은 두 적외선 파장에서 함께 확인된 크고 작은 밝기의 요동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강착 원반 자체에서 벌어지는 요동이다. 블랙홀이 집어삼킨 먹잇감이 퍼져 있는 강착 원반의 밀도는 항상 고르지 않다. 어떤 부분은 밀도가 더 높고 온도가 뜨거울 수도 있다. 이런 들쭉날쭉 밀도가 변하는 강착 원반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비교적 작은 수준에서 빛의 세기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동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블랙홀 주변에서 강하게 형성된 자기장은 더 격렬한 플레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건 마치 태양에서 플레어가 터질 때와 비슷하다. 블랙홀 주변에 형성된 자기장 다발이 서로 재결합하고 연결되면서 순식간에 막대한 양의 입자들이 바깥으로 뿜어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은 워낙 강력한 폭발적 현상이다. 그래서 파장에 따라서 밝기의 차이가 크지 않다. 2.1μm와 4.8μm 두 가지 파장 모두에서 비슷한 매우 밝은 섬광으로 목격된다. 천문학자들은 특히 급격한 플레어가 포착된 순간, 두 가지 파장에서 관측된 가장 밝은 순간의 밝기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이 가설에 잘 부합한다고 추정했다.

이처럼 블랙홀도 사실 매우 격렬하게 요동치는 존재다. 얼핏 생각하면 블랙홀은 그저 항상 어둠 속에 잠잠하고 묵묵하게 있는 지루한 존재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심지어 태양 플레어처럼 눈부신 섬광까지 토해내는 존재다. 시시각각 요동치는 블랙홀의 모습을 더 제대로 파악하려면 더 긴 시간 블랙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연구를 이끈 천문학자들은 과감하게, 한 번 더 제임스 웹의 시간을 요청했다. 24시간, 하루 내내 제임스 웹의 눈이 쉬지 않고 오직 궁수자리 A* 블랙홀만 바라보는 관측이다. 이 관측이 무사히 끝난다면, 그래프 중간에 끊긴 빈 틈 없이 하루 내내 블랙홀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우주에서 가장 묵직한 관찰 예능이 실현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사이언스] 우리가 숨 쉬듯 은하도 호흡한다

· [사이언스] '오르트 구름'은 소용돌이 치고 있다

· [사이언스] '과녁 은하'와 뉴턴의 사과

· [사이언스] 인류가 '별빛'을 잃어버린 천문학적 전환점

· [사이언스] 나선팔 은하의 기원을 밝혀라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